승경도놀이
옛 벼슬의 이름을 종이에 도표로 만들어놓고 놀던 아이들놀이.
주로 양반집의 아이들이 즐겨 놀던 놀이로, ‘종경도(從卿圖)’·‘승정도(陞政圖)’ 또는 ‘종정도(從政圖)’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나 ‘벼슬살이하는 도표’라는 뜻이다.
성현(成炫)은 ≪용재총화≫에서 이 놀이를 창안한 사람이 하륜(河崙)이라고 기록하였다. 조선시대 관리의 총 수는 중앙과 지방을 합해 모두 3,800명을 넘지 않았지만 등급이 많고 칭호와 상호관계가 매우 복잡하였다.
따라서 양반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관직에 대한 체계적인 관념을 자제들에게 익혀주기 위하여 이 놀이를 장려하였던 것이다. 승경도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길이 1.5m, 너비 1m쯤이다. 전체 면적의 4분의 3에는 300여 개의 칸을 만들어 관직명을 써넣고 남은 공간에는 놀이의 규칙을 기입한다.
사방으로는 이른바 외직인 8도의 감사·병사·수사, 주요고을의 수령을 배치하며, 중앙부의 첫 꼭대기에는 정1품(正一品)을, 그 다음에 종1품(從一品)을 차례대로 늘어놓아 맨 밑에는 종9품이 오게 한다.
벼슬자리의 수를 모두 다 써넣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하면 놀이에 긴장감이 없고 지루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도표의 크기에 따라 주요관직만을 적당히 배치한다.
이 놀이를 할 때에는 앞에서와 같은 관직도표 외에 승경도 알과 각 색의 말이 있어야 하며, 노는 사람은 4∼8명까지가 적당하다. 승경도 알은 길이 한 뼘, 굵기 3㎝ 정도의 윤목(輪木)으로 다섯 마디의 모를 내고 그 마디마다 하나에서 다섯까지의 눈금을 새긴 것이다.
이를 윷으로 대신하는 일도 있다. 말은 일정한 형태가 없이 아무 것이라도 좋으나 구별이 쉽도록 하기 위하여 빛깔을 달리하는 것이 좋다.
노는 사람은 두 패로 갈라 앉으며 순서에 따라 방망이를 두 번씩 굴려서 출신을 정한다. 첫번 굴린 것은 ‘출신의 큰 구별’이 되고, 두 번째는 ‘출신의 작은 구별’이 된다.
출신의 큰 구별은 문과출신, 무과출신, 산야에 숨어서 공부만 하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는 은일출신(隱逸出身), 과거에 붙지 못한 채 벼슬을 사는 남행출신(南行出身), 그리고 군대에서 복무하는 군졸출신(軍卒出身)의 다섯 가지이다.
작은 구별은 문무과의 과거 중에서 증광과(增廣科)·식년과(式年科) 등으로 구별되는데, 증광과는 경사 때에 임시로 보는 과거이며, 식년과는 3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베푸는 과거를 이른다.
은일출신도 한 번 부름을 받은 것과 두 번 받은 것을 구별하며, 남행에도 생원이나 진사처럼 과거에 합격하거나 불합격한 것을 따지고, 군졸도 갑사(甲士)·정병(正兵)으로 나눈다.
큰 출신이 결정되면 이에 따라 각 색의 말을 나누어 가진다. 문과는 붉은 말, 무과는 푸른 말, 남행은 노란 말, 군졸은 흰 말, 그리고 은일은 노란 바탕에 붉은 테를 두른 말이다. 두 번째 말을 굴린 사람은 그 숫자에 따라 자기 출신의 칸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문과란의 경우 5에는 증광, 4에는 식년, 3에는 정시(庭試), 2에는 별시(別試), 1에는 도과(道科)로 되어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말을 굴려서 누가 빨리 가장 높은 자리(문과출신은 영의정, 무과출신은 도원수)에 올라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 놀이에는 파직이나 사약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어 변화와 긴장을 더하게 된다.
승경도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 중에 양사법(兩司法)과 은대법(銀臺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양사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 벼슬자리에 있던 사람이 미리 규정된 수, 즉 2면 2, 3이면 3을 얻게 되면 그 사람이 지정한 상대의 말은 움직이지 못하며,
다만 역시 정해진 숫자인 5면 5, 4면 4를 얻어야만 비로소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 있다. 은대는 승정원으로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규정된 수를 얻으면 당하(堂下)에 있는 모든 말들은 자기네가 굴려서 얻은 수를 쓰지 못하고 모두 이 사람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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