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쟁점 정리
-전라북도 김승환 교육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에 관한 쟁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누가 국민에게 무상보육을 약속했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만 3세~5세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무상보육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은 2012년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습니다.
2. 무상보육 공약 이행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공약 이행의 책임은 그것을 말한 사람이 져야 합니다. 일종의 '자기책임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중앙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3. 실제로는 무상보육 이행의 책임이 누구에게로 가 있나?
대선공약을 말한 대통령은 무상보육 이행의 책임에서 빠지고, 그것을 시도교육청에 전가시켜 버렸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모두를 시도교육청에 떠 넘긴 것입니다.
4. 어린이집과 시도교육청은 법률상 어떤 관계에 있나?
어린이집을 관할하는 중앙부처는 보건복지부이고, 유치원을 관할하는 중앙부처는 교육부입니다.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집 업무(설립인가, 관리감독의 권한과 책임)는 시도지사와 연결되고, 교육부의 유치원 업무(설립, 설립인가, 관리감독의 권한과 책임)는 시도교육감과 연결됩니다.
즉, 시도교육감은 어린이집 업무와 관련하여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집 설치 근거법률은 영유아보육법이고, 유치원 설치 근거법률은 유아교육법이기 때문입니다.
5. 시도교육감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예산을 누구를 대상으로 배정할 수 있는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1조는 "이 법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그 소속기관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설치 경영함에 필요한 재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교부하여 교육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 조항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대입해 보면 교육감은 유치원의 설치 경영에 관여할 권한과 책임이 있지만, 어린이집의 설치 경영에는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따라서 교육감은 교육예산을 어린이집에 배정할 수 없습니다.
6.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유아교육법,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하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어떤 의도로 만들었나?
법률의 제정은 국회의 전속적 권한입니다(헌법 제40조).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서 법률이 개별적이고(개별성의 원칙)구체적이고 (구체성의 원칙) 명확하게(명확성의 원칙) 위임한 사항에 대해서만 규정할 수 있습니다.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대통령이 만든, 법률의 하위규범으로서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시행령으로 시도교육감으로 하여금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하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행령은 시행령의 상위규범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들(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유아교육법, 영유아보육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위 법률들 어디를 봐도, 국회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감의 책임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위임 조항을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7.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배정 책임의 왜곡이 헌법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정부는 시행령이건 시행규칙이건 어떠한 규범형식으로도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허용하게 되면 3권분립의 원칙의 근간인 국회의 입법권이 와해되는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를 만나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국회가 제 때에 법률을 마련해 줘야 하는데, 맨날 정쟁만 하느라 법률을 만들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강행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의식입니다. 민주주의는 '시간'이라는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민주주의와 속도는 서로 친할 수 없습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위반하는 것은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행위이고, 헌법 제65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탄핵사유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8. 내년도 정부예산 규모와 교육예산 규모 비교
내년도 정부예산은 5.7% 증액 편성되었는 데 반하여, 교육예산은 도리어 3.3% 감액 편성되었습니다. 22조원을 들여 파헤친 4대강 유지비로만 매년 약 7천억원 정도가 투입됩니다. 4대강은 국민의 고혈을 빨아들이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예산을 큰 폭으로 감액시킨 것은 교육에 대한, 뭔가 특별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고 조심스럽게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9. 교육부장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간사, 야당간사 사이의 합의를 10분만에 뒤집어 버린 힘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국회는 주요 외국의 사례처럼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상임위원회(standing committee)도 그 내부에 법안심사를 위한 소위원회(subcommittee)를 두고, 소위원회가 합의를 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임위원회는 그대로 통과시킵니다.
이런 국회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어제 발생한 합의 번복은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합의당사자들의 정치적 지위와 힘을 훨씬 더 능가하고 지배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아니고서는 그런 상황을 연출할 수는 없습니다.
10.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사태를 통해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통령 공약사항인 무상보육의 이행책임을, 헌법과 법률을 명맥히 침해하면서까지, 시도교육감에게 강압적으로 전가시키는 저의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지방교육자치 죽이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직선교육감 1기 때 속칭 진보교육감 6명도 힘들었는데, 6. 4 지방선거에서 대거 13명이 당선되면서 지방교육자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단할 수 있습니다. 지방교육자치 죽이기라는 반헌법적 반법률적 조치를 강행하는 와중에서 야기되는 희생과 혼란에 대한 배려가 과연 저들의 머릿속에 있을까요?
11.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자행되는 헌정질서 문란행위는 주권자인 국민의 힘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건 국회의 입법권이 대통령령에 의해서 침탈당했다는 것인데요. 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르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절대로 시도교육청 책임으로 부과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에 살짝 근거 조항을 만들어서 '법'대로 해야 한다고 강변하거든요. '시행령'대로 해야 한다고 말해야 그나마 일말의 정직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법'(law, Recht)은 헌법 - 법률 - 시행령 - 시행규칙 - 조례 - 자치규칙의 규범 위계질서(hierarchy of norms, Normenhirarchie)를 이루고 있잖아요. 상위법은 하위법의 효력근거이고, 하위법은 (적극적으로는) 상위법을 준수하고, (소극적으로는) 상위법을 위반해서는 안 되지요.
지금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이러한 규범 위계질서, 즉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뒤흔들어 버린 것이에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헌법질서를 파괴한 것이지요
의무법률 조항도 의미가 있지만, 그러한 조항이 있건 없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면 법과 원칙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독선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런 대선공약을 증거로 제시하면 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 그거 대선공약 맞아. 누가 아니래? 애꿎은 시도교육청에 뒤집어 씌우든 국회의 입법권을 유린하든 돈만 만들어 내면 되는 거 아냐?'라는 식입니다
현재 권력자들은 무상급식 대 무상보육 프레임을 만들어 놓았거든요.
그런데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한 번 보십시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를지라도 모두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국민 대 국민'의 싸움이 일어나도록 짜놓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참으로 비열하고 치졸하고 악랄한 수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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