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1. 26일. 인근 수로에서
‘양날의 검’이 돼버린 왕우렁이
친환경 제초 일꾼 되느냐
생태교란종으로 남을 것이냐
우리의 적극적 대응에 달려
‘양날의 검’이란 말이 있다. 양쪽에 날이 있어 양쪽을 다 쓸 수 있는 칼이라는 뜻으로, 잘 활용하면 득이 되나 잘못 쓰면 해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농업에서는 몇 년 사이 왕우렁이가 ‘양날의 검’이 돼 버렸다.
왕우렁이는 남미 아마존강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1983년 식용으로 도입되어 양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2년 충북 음성에서 잡초 제거를 위해 벼농사에 처음으로 왕우렁이를 투입했다. 벼농사에 왕우렁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왕우렁이의 왕성한 잡초 섭식능력 덕분이다. 모내기 후 제초제를 2회 살포한 논의 경우 약 90%의 제초효과를 보인 반면, 왕우렁이를 풀어놓은 논에서는 제초효과가 98%에 달했다. 또한 일반제초제에 저항력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 달개비, 벗풀 등 슈퍼잡초까지 거의 완벽하게 제초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하천에서의 식물 플랑크톤의 지나친 발생을 억제하는 데 왕우렁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왕우렁이의 뛰어난 제초 능력 덕분에 ‘왕우렁이 농법’은 친환경농업의 일환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2009년 전라남도 친환경농법 69,941ha 중 89%가 왕우렁이를 이용한 농법이었다. 우렁이 농법은 정부에서 장려하는 친환경 사업으로, 이 농법이 인기를 끌면서 전국 각지의 논에 많은 수의 우렁이가 방사됐다. 최근에는 친환경재배단지는 물론 일반재배 면적을 포함해 약 10만 ha까지 확산됐다.
그러나 논물 대기 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잡초만 먹어야 할 우렁이가 모까지 갉아먹는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나라 환경에서 월동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왕우렁이가 한국 기후에 서서히 적응해 해남, 강진, 영암 등 남부지방 일부에서 월동해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피해 사례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필리핀, 일본, 대만 등에서는 왕우렁이를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해 양식을 제한했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세계 100대 최악의 침입외래종’에 왕우렁이를 포함시켰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한반도 겨울기온 상승이 왕우렁이의 월동가능지역을 남부에서 북부로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 말 농촌진흥청에서 논 주변 수로에서 왕우렁이의 월동 생태를 조사한 결과, 경기 강화, 고양을 비롯해 강원 원주에서도 산란된 알을 관찰했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왕우렁이에 대한 지속적이고 철저한 생태 조사를 통해 현재의 월동한계지역과 미래 시나리오를 활용한 향후 월동가능지역 예측 연구를 착수했다.
하지만 외래종인 왕우렁이의 왕성한 제초 능력을 잘 활용한다면 쌀 수입개방에 대응하여 쌀의 효용가치를 높이고, 최고 품질의 친환경 쌀을 생산해 쌀의 고급화를 통한 농가 소득향상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왕우렁이 농법에 대한 강도 높은 ‘관리 방안’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가장 먼저 철저한 야외 월동조사를 통해 왕우렁이의 서식지 분포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특히 겨울철에 농수로가 얼지 않는 지역에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왕우렁이의 확산을 예측해 지자체 및 농업인에게 알려주고 대책을 마련해 실천한다면 농가에 득이 될 것이다. 또한 왕우렁이 사용 적정 크기, 수심관리, 유출 방지망 설치, 벼 수확 후 왕우렁이 수거법 등을 겨울철 농업인 영농 교육이나 다양한 활용 가이드라인의 형태로 제공하는 등 농가 지도활동 강화에 민·관의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왕우렁이를 잘 관리한다면 왕우렁이를 양식하는 농가, 왕우렁이를 제초 일꾼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농업 농가가 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후 관리 부족으로 환경에 해를 입힐 수도 있는 만큼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양날의 검 왕우렁이가 논 잡초를 베는 최고의 일꾼이 될지 우리 농업생태계에 해가 되는 생태교란종으로 남을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 방혜선/농촌진흥청 기후변화생태과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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