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6월 1일. 오창에서
무당벌레 이야기
화려한 옷을 입은 무당벌레
곤충은 변온동물이라서 온도가 뚝 떨어지면 행동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각 자신에 맞는 방식대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다. 특히 무당벌레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란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면 따뜻한 곳에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가 함께 떼로 모여 겨울잠을 잔다. 주로 바람이 안 들이치는 바위 아래나, 따뜻한 낙엽 더미, 심지어 사람들이 사는 집에도 들어와 지낸다. 무당벌레는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동료들을 모을까? 집합페로몬을 내뿜으면 그 향내를 맡은 녀석들은 죄다 한 곳으로 모인다. 여럿이 뭉쳐 있으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 좋다. 더구나 혹시라도 새 같은 천적을 만나도 워낙 숫자가 많아 누굴 잡아먹어야 할지 난감하게 만들 수도 있다. 화려한 색깔까지 띠어 천적들이 ‘독이 많을 것 같아, 먹지말자.’하며 포기하고 뒷걸음질 칠 수도 있다.
무당벌레는 등딱지날개가 화려하고 무늬가 예뻐 사람들과 많이 친하다. 어른이고 아이고 무당벌레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성모마리아에게 무당벌레를 바쳤었는데, ‘Ladybeetle’란 영어 이름이 바로 그 때 성모 마리아와의 딱정벌레에서 나왔다 한다. 우리나라에선 녀석이 굿 하는 무당처럼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해서 무당벌레라 불렀고, 모양이 됫박 닮았다 해서 한 때는 ‘됫박벌레’한 이름도 가졌다. 북한에서는 녀석의 몸에 점박이 무늬가 많다고 해서 무당벌레를 ‘점벌레’라고 부른다.
지구에는 무당벌레류가 5000 종도 넘게 살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만도 90종이나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무당벌레’가 가장 흔하고 많다. 그런데 무당벌레는 점무늬에 변이가 많다고 소문이 나 있다. 어떤 녀석은 주황색 바탕에 까만색 땡땡이 무늬가 찍혀있고, 어떤 녀석은 까만색 바탕에 빨간 땡땡이 무늬가 찍혀 있고, 어떤 녀석은 까만 바탕에 노란 점무늬가 찍혀 있고, 또 어떤 녀석은 주황색 바탕에 아예 점박이 무늬가 없다. 그 뿐 아니다 점박이 숫자도 변이가 있다. 점박이가 두 개 찍힌 녀석도 있고, 네 개가 찍힌 녀석도 있고, 열아홉 개 찍힌 녀석도 있다. 하지만 점박이 수도 다르고 색깔이 약간씩 달라도 모두 무당벌레다. 또한 몸 색깔이 약간씩 달라도 공통적인 특징은 몸 색깔이 굉장히 화려하다.
왜 무당벌레는 화려한 옷을 입었을까? 새 같은 천적이 자신을 잡아먹지 말라고 미리 경고는 하기 위해서이다. 더구나 건드리면 다리나 입에서 노란색의 액체를 뿜어낸다. 노란 액체의 냄새는 고약하고, 맛도 굉장히 쓴데, 그 속에는 독 물질이 들어있다. 그러니 어린 새나 아기 개구리 같은 포식자들이 멋모르고 무당벌레에 달려들어 집어삼키면 구역질을 하고 토한다. 새들은 학습능력이 뛰어나 한 번 역겨운 먹이를 먹으면 다음엔 그 먹잇감을 먹지 않는다. 화려한 옷을 입은 무당벌레가 쓴 맛에 독까지 가지고 있으니 새들은 ‘무당벌레처럼 화려한 색을 띠는 곤충한테는 독이 있을 거야.’ 하며 슬슬 피한다. 몸이 작은 무당벌레의 천적을 피하려는 지혜가 빛난다.
무당벌레는 진딧물과 같은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포식자다. 실제로 밭이나 들에 나가면 농작물이나 갖가지 식물에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어 식물의 즙을 빨아먹고 있는 걸 심심찮게 구경한다. 그러면 ‘진딧물 밥상’에 어김없이 무당벌레가 나타난다. 수백 마리도 넘는 진딧물을 보고 무당벌레는 신이 난다. 이렇게 많은 진딧물 밥상이 차려있다니! 감탄을 하면서 진딧물을 하나 둘 셋 잡아먹는다. 그러니 진딧물의 천적은 무당벌레인 셈이다.
하루 평균 무당벌레 한 마리가 150마리도 넘게 진딧물을 잡아먹는다니 입이 떡 벌어진다. 진딧물 식사를 배부르게 한 무당벌레는 알을 낳는데, 역시 진딧물이 붙어 있는 식물 근처에 낳는다. 쌀알 같은 알을 약 20개에서 50개씩 무더기로 낳아 붙인다. 먼저 깨어난 애벌레는 아직 안 깨어난 알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하지만 무당벌레의 애벌레도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엄마 무당벌레도 진딧물을 잡아먹고, 아기 무당벌레도 진딧물을 잡아먹으니 농부들은 신이 난다. 무당벌레가 알아서 골칫거리인 진딧물을 잡아먹으니 따로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무당벌레는 살아있는 농약인 셈이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사실 무당벌레의 화려한 무늬는 일종의 경고색이라 할 수 있는데, 눈에 잘 띄는 색상은 더 커다란 상위 포식자에게 미리 주의를 주는 환기작용이 있다. 쉽게 말해 ‘나를 건드리면 재미없어’ 이런 뜻이다. 만약 무당벌레를 사람이 손으로 건드리면 곧 죽은 척하며 몸을 뒤집는다. 더 심하게 만지면 시큼한 냄새가 나는 노란색 분비물이 배어 나오는데, 이 현상을 ‘출혈반사’라고 한다. 즉 노란색 물은 무당벌레의 혈액이고 외부 자극을 받으면 무당벌레의 각 다리 무릎 관절부에서 반사적으로 피가 새어나온다. 쓴맛과 악취가 나는 물질을 내뿜어 천적을 피하기 위한 무당벌레만의 독특한 생존전략이다.
무당벌레는 실제로 혈액 속에 구토를 유발하는 코치넬린(coccinellin)이라는 성분을 갖고 있다. 만약 멋모르는 어린 새가 무당벌레를 집어삼키면 이내 구역질을 일으켜 토하고 만다. 한 번 고약한 경험을 한 새는 다시는 무당벌레를 건드리지 않으며 이런 사전 경고효과 때문에 무당벌레의 얼룩무늬만 흉내 내고 해로운 성분이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곤충들도 있다.
서양에서는 무당벌레를 ‘레이디버그, 레이디버드(ladybug, ladybird)’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레이디(lady)는 성모마리아를 가리킨다. 즉 성모마리아의 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성모마리아가 무당벌레를 불러 모아 농사를 도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찍부터 중세 사람들은 농작물의 해충을 먹어치우는 포식자로서의 무당벌레 특성에 감탄했던 것 같다.
농작물에 많이 생기는 진딧물은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나타나 식물의 즙을 빨아먹으면 어린 순을 말라죽게 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를 매개하여 식물에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당벌레는 그런 진딧물의 가장 큰 천적 곤충이라 할 수 있다. 하루 평균 한 마리의 무당벌레가 150마리 이상의 진딧물을 먹어치우므로 가히 살아 있는 농약이라 불릴 만도 하다. 진딧물을 배부르게 잡아먹은 무당벌레는 역시 진딧물이 많은 식물 근처에 알을 낳는다. 노란색 타원형의 알을 20~50개 정도 무더기로 낳아 붙이는데, 여기서 곧 애벌레들이 태어난다. 신기하게도 먼저 태어난 애벌레들이 미처 깨어나지 않은 옆의 알을 갉아먹기도 한다. 어미가 어린 애벌레들이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여분의 영양분으로 알을 더 낳은 것이다.
짝짓기하고 있는 칠성무당벌레 등에 7개의 점 무늬가 뚜렷하다.
무당벌레는 항상 위로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다. 무당벌레를 한자로는 천도충(天道蟲)이라고 하는데, 천도는 해가 움직이는 길을 말한다. 손 위에 무당벌레를 올려놓으면 빙빙 돌다가 결국 손가락 끝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즉 이 곤충이 언제나 해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쫓아다니다 보니, 보통 위를 향해 자라는 싱싱한 어린 가지 끝에 진딧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습성이 생겼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무당벌레를 몸에 점무늬가 많다고 해서 ‘점벌레’라고 부른다. 무당벌레의 점의 수가 많으면 해충이고, 적으면 익충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무당벌레 중에는 진딧물을 먹는 이로운 종류도 있으나 식물 잎을 갉아먹는 해충도 있다. 따라서 그런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데,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무당벌레는 식식무당벌레아과(Epilachninae)에 속하는 종들로 점의 수가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같은 종에서도 점무늬가 없는 것, 두 점인 것, 점 수가 많은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항상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무당벌레의 식성은 식물을 먹는 것, 진딧물을 먹는 것 외에 꽃가루나 다른 곤충의 애벌레를 잡아먹는 것, 깍지벌레를 먹는 것, 흰가루병균을 먹는 것 등 종류에 따라 선호하는 먹이가 다르다.
온도 변화 적은 구석에서 겨울잠 자기도
무당벌레 애벌레는 어른벌레와 달리 몸은 길쭉하고 등에 가시가 나 있다.
전 세계에 무당벌레는 5000여 종, 우리나라에만 90여 종이 살고 있다. 그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무당벌레(Harmonia axyridis)는 산지, 공원, 풀밭, 인가 근처 어디에서나 살고 있으며 연중 나타난다. 무늬의 변이가 매우 심해 황갈색 바탕에 흑색 점 무늬, 흑색 바탕에 붉은 점 무늬, 황색 바탕에 점이 없는 경우 등 다양하다. 칠성무당벌레(Coccinella septempunctata) 역시 흔한 종류로 이름처럼 7개의 검은 점 무늬가 뚜렷하다. 진딧물을 포식하는데, 유충 시기에 한 마리가 약 4000마리의 진딧물을 포식할 정도로 익충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남생이무당벌레(Aiolocaria hexaspilota)는 주로 물가나 계곡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몸 길이가 11~13㎜로 한국산 무당벌레 중에서 가장 크다. 뚜렷한 적황색 바탕에 흑색의 띠 무늬가 서로 연결되어 매우 아름다운 무당벌레이다. 알 색깔이 빨간색이며 애벌레는 잎벌레의 유충을 잡아먹고 자란다.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Henosepilachna vigintioctomaculata)는 주로 평지의 농경지 주변에서 발견되는데, 황갈색 바탕에 옅은 잔털이 덮여 있다. 성충과 애벌레 모두가 감자나 가지과 식물의 잎을 갉아먹으므로 해충으로 여겨지는 무당벌레다.
무당벌레의 겨우살이
온도가 뚝 떨어진 겨울이면 곤충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변온동물인 곤충은 겨울 추위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저마다의 전략으로 겨울을 난다. 무당벌레의 방식은 온도 변화가 적은 구석에 숨어들어 떼 지어 월동하는 것이다. 가을이 지나갈 무렵 산이나 공원에 인접한 아파트 담벼락에 흔히 무당벌레가 많이 보인다. 특히 따뜻한 오후, 밝은 색 건물의 외벽에 많은 무당벌레가 붙어 오르락내리락하며 어딘가 갈 곳을 찾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는 감자나 토마토, 가지 잎을 갉아먹는 해충이다.
햇살의 방향을 따라 분주히 움직이던 무당벌레 무리는 결국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게 되는데, 너무 춥지 않고 온도 변화가 적은 그런 곳을 찾게 된다. 따라서 아파트 베란다에 무당벌레가 들어오는 일이 많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창고 건물 안쪽, 창틀 깊숙한 곳, 때로는 사찰 문화재나 돌탑 속에 숨어들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 무당벌레는 나무 그늘 아래의 낙엽 속이나 나무 껍질 밑에 무리지어 모이고 이듬해 봄까지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 상태로 겨울잠을 잔다. 유럽에는 매년 무당벌레가 엄청난 수로 모여 월동하는 고원지대가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무당벌레는 겨울잠과는 별개로 날씨가 너무 더운 여름이면 서늘한 곳에 숨어 여름잠을 자기도 한다.
- 출처: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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