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귀 쫓기
정의
설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인 야광귀를 쫓기 위해 체 등을 걸어두고 머리카락을 태워 마당에 뿌리는 풍속.
이칭
충북 음성에서는 ‘달귀귀신’이라고 하며,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는 ‘야귀할멈’이라고도 한다. 또한 문헌 자료에서는 야광귀를 야유광(夜遊狂)·야광신(夜光神)·앙광이 등으로도 부른다. 야광(夜光)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 두 가지 설이 나온다. 첫째는 야광은 구귀(癯鬼)를 뜻하기 때문에 구광(癯光)이라 한다는 설이다. 구귀란 음식을 먹지 못해서 바짝 여윈 귀신을 뜻하는데 한자 야(夜)의 음과 구(癯)의 훈이 비슷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 보았다. 이에 대해 유득공은 이것은 틀린 것이고 약왕(藥王)이라는 음이 와전되어 만들어진 말로 보았다. 약왕의 형상이 추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무서워하며, 이런 이유에서 어린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했다.
내용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각종 세시기(歲時記)에는 야광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경도잡지』에는 “야광이라는 귀신이 있는데, 밤에 사람의 집에 찾아와 신발 훔치는 것을 좋아한다. 이때 신을 잃은 사람은 일년 신수가 불길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신발을 숨겨놓고, 야광귀가 오기 전에 일찍 잠을 잔다. 이를 막기 위해서 장대 등에 체를 걸어둔다. 야광귀가 찾아와 체를 보고는 구멍을 세다가 순서를 잃어버려 다시 세면서 결국 다 세지 못하고 새벽에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름이 야광인 귀신이 이날 밤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두루 신어 보다가 발 모양이 딱 들어맞는 것을 신고 가 버리면 그 신발의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것이 무서워 모두 신발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대청 벽이나 섬돌과 뜰 사이에 걸어 둔다. 야광귀가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다 세지 못하여 신발 신는 것을 잊어버리고 닭이 울면 가 버리기 때문이다. 야광이 어떤 귀신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혹시 약왕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약왕의 모습이 추하므로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는 무서워 떤다.”고 전한다.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야광귀를 쫓기 위해 저녁에 마당에서 머리털을 태우고 그 재를 뿌리는 풍속을 적고 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야광귀를 ‘야광신’이라 지칭하고 있으며, 이를 ‘앙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전한다. 설날에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정월 대보름에도 내려온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고, 설날에는 차례와 세배 등을 다니느라 매우 피곤하기 때문에 방심하고 곤하게 잠자고 있을 때 신발을 훔쳐 간다는 것이다.
현대 민속조사보고서 자료인 『한국민속종합보고서(韓國民俗綜合報告書)』와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세시풍속』에도 야광귀를 쫓는 풍속이 조사되어 있다. 내용은 세시기의 그것과 동일한데 『해동죽지』에서처럼 설날뿐만 아니라 대보름에도 야광귀를 쫓기 위한 풍속이 행해지고 있음이 발견되며 경기도 김포에서는 몸에 맞는 옷이 있으면 옷도 가져간다는 변용 사례도 발견된다.
한편,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村山智順)는 야광귀를 쫓기 위해 걸어두는 체의 구멍을 세는 이유에 대해서 체의 구멍을 눈으로 생각한 것으로 풀이한다. 즉, 체는 무수히 많은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야광귀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방상씨의 눈이 4개로 표현되어 악귀를 쫓아내고 있다는 점과도 연결하고 있다. 즉, 눈이 많은 귀신이기 때문에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을 것인가 하는 호기심에서 체의 구멍을 세게 된다는 것이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