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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누리/우리문화 곶간

길놀이의 제의적 특성과 전통

by 지암(듬북이) 2015. 3. 18.

 

 

 

 

 

 

 

길놀이는 본놀이에 앞서 마을의 거리에서 펼쳐내는 놀이 일체를 일컫는다. 공동체신을 맞이하는 길에서는 곧 신의 행렬이 된다. 신과 인간이 길 위에서 한판 푸지게 펼쳐내는 신명(神明)이고 축제(祝祭)인 것이다.

앞놀이로서 길놀이는 사람들이 모두 뒷치배 역할을 하며 놀이 행렬을 따르므로 자연스레 대동놀이가 되어 마을 전체를 뒤집는 축제적 변혁이 일어나고, 나아가 제의적 구조 속에서 신탁(神託) 행위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길을 걸으면서 신을 모시고 놀이를 한다는 것은 신 앞에서 평등함을 추구하고 선언한다는 것이며 차별을 깨부수는 열린 굿판이라 할 수 있다. 대동놀이로서 길놀이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이 되고 지침이 되며 대동과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고 수단이다.

 

길놀이가 비일상적 제의 공간에서 행할 때는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니게 된다.

첫째 신등을 앞세우고 신기를 모시고 풍물을 울리며 나아가는 길놀이로서 신맞이 행렬은 청신과 오신의 제차(祭次) 일환으로 연행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대대적인 환영연(歡迎宴)이고 정성이 깃든 영접의례라 할 수 있다.

 

둘째, 초자연적인 기운이 감싸고 있는 마을의 상징적 표식 공간에서 길놀이가 시작된다는 것은 신이 이곳으로부터 현세로 등장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길놀이를 통하여 현실과 신계를 연결시켜 줌으로써 두 세계가 서로 고립된 것이 아닌 상호 소통하여 성속결연(聖俗結緣)의 체계망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신의 형상이거나 신을 대리하는 상징체가 길에 앞장선다는 것은 신과 마을 구성원들이 함께 평면적 개념으로 이동하면서 신력에 의해 마을이 정화되며 액을 몰아내며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의 창구 구실을 하던 마을의 여러 갈래 길은 현대에 와서 큰 신작로나 계획적으로 구획된 '도로'에 의해 단순화되고 획일화 되었다. 더불어 길놀이의 전통은 공연화, 상품화되면서 앞놀이로서의 개념과 제의성이 소멸되었다.

 

따라서 길놀이의 소생은 집단의례의 제의적 전통이 복구되었음을 의미하고, 전통적 공동체문화의 부활과 복원을 염원하는 피지배 민중들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길놀이’란 길과 놀이의 관계 맺음이 이룬 개념

우리가 집을 나설 때 언제나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길’이다. 길은 목적지 까지 닿아 있고 나아갈수록 계속하여 새로운 길이 열린다. 길에서는 많은 실재와 가상의 존재들을 만난다. 길은 공간과 공간, 세계와 세계를 연결해 주는 끈이며 한 점에서 다은 점으로 이동하는 통로이다. 길이란 출발점과 도착점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소통의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길은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 즉, 도로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단순하게 구체적인 도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길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은’ 평등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 길은 추상적, 비유적, 상징적 의미로 활대해 볼 때 사람이 삷을 살아가거나 사회가 발전해 가는 데 있어서 지향하는 방향, 지침이 되기도 하고, 방법이나 수단을

의미하기도 하며 행위의 규범을 뜻하기도 한다.

 

길 위에는 우리의 삶이 묻어 있고 역사가 새겨져 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개인의 역사와 공동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길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의미를 가지며 거기서 문화가 창출된다. 일터로 갈 때나 올 때나,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 그곳에서 소망을 일구고 어떤 때는 안타까움도 생기며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진다.

길은 사람과 자연을 소통하게 하는 구실도 한다. 그곳은 생존을 위해, 먹을거리를 구하러 갈 때 선택되어지는 통로이다. 길은 만사가 대길하며 무사고 수명장수 소원성취를 발원하러 가는 나들목이 되기도 한다.

 

‘길’이라는 말에 다른 어휘가 덧보태지면 구체적인 문화가 된다. ‘길’이 붙어 새로운 의미가 된다. 맺힌 원한을 풀어내는 길닦음, 같은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 길 다니는 사람들이 도중에 먹는 참으로 길참, 또 마을 걸립패가 이동하면서 치는 가락인 길군악, 일꾼을 소 등에 태우고 걸어가면서 부르는 들노래로서의 길꼬냉이, 길에서 노니는 거리굿으로서 길놀이 등이 그것이다.

 

길과 놀이의 관계 맺음으로 나타나는 것 가운데 하나인 길군악을 살펴보자. 농민들이 옛날에는 곧바로 전투병이기도 했기에 이동시에 으레 길군악을 치면서 행진했다. 그들이 치는 음악이 곧바로 군악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농민들은 두레농사를 지을 때 논으로 나가고 들어오면서 반드시 길가락을 쳤다. 길군악은 보다 경쾌한 가락으로 발걸음을 신나게 하고 보무를 빠르게 도와준다. 걸립패가 마을을 이동할 때에도 길군악을 쳤다.

길군악은 길에서 연주되고 움직이는 모든 형태의 음악과 놀이를 지칭하고 있다. 마을의 잔치를 알리는 길거리 행사는 모두 길군악을 쳤다. 따라서 농민들에게는 행진곡풍의 박진감 나는 길군악 가락이 매우 중요한 활력이 되었다. 길군악을 치고 가는 모든 길은 춤의 길이고 놀이의 길이며 잔치의 즐거움이 존재하였다.

 

“길놀이는 지정된 놀이판에서의 놀이에 앞서 마을의 마당과 거리에서 갖는 놀이를 일컫는다.”*심우성[남사당패 연구] 다시 말해 “풍물패, 길군악대, 탈꾼 따위가 탈놀 이 본마당에 들어가기 전에 탈춤을 놀 곳까지 풍악을 울리면서 가는 행렬”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상의 길놀이로서 옛날에는 길군악을 치며 노는 두레풍장(풍물놀이)이 따랐다. 마을의 물리적 길에서 일터로 나갈 때면 으레 김매기 둘레에 꽹과리, 징, 장구를 치는 두레 풍장을 쳤는데 이것은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었다. 흔히 마을에서 들에 나갈 때와 길을 다 매고 마을로 들어올 때에는 길굿을 쳤으며 길굿은 거리굿, 길놀이라 일컫기도 한다.

일반적인 길놀이는 마을이나 고을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집단을 이루고 노는 놀이 가운데 길에서 펼쳐지는 모든 놀이나 행렬이 포함된다. 길놀이는 머물러 노는 재미에다가 이동하면서 갖는 즐거움이 보태진다. 공동체의 구성원 누구나 자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만족을 준다.

 

“길놀이는 한 고을의 가장 번화한 거리, 즉 부군당이나 서낭당이 있는 길목 장터 네거리를 택하여 굿의 황홀과 도취를 고조시키는 행군”이라 하였으며, “구경군이 있으며 한바탕 풍물놀이나 개인의 특기를 풀어 보이고, 축제처럼 거리낌 없이 희희낙락하게 흥을 돋우어 연희자와 관중이 하나가 되어 커뮤니케이션을 이룬다.”고 하였다. 따라서 “지역 공동체가 하나의 연희 공동체로서 공명과 일체감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길놀이에서는 단순히 길을 따라 걷는 것만이 아니고 좀 너른 장소가 나타나면 그곳에서 연행을 펼치며 흥취를 돋우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서로 생각과 느낌 따위를 주고받으며 소통을 하였던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길은 자연을 넘어 초자연적인 존재와도 만날 수 있다. 길은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이어주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 더구나 그러한 길은 통해 초자연적 존재인 공동체신을 만나고 그 길에서 놀이로 맺어질 때, 일상의 물리적 길과는 다르게 여겨진다. 이때의 길놀이는 일상의 길놀이와 구분된다. 신을 맞아 만나는 길이며 길군악을 울리며 신을 모시는 일로서 곧 신의 행렬이다. 신과 함께하는 길놀이는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이 길 위에서 한판 푸지게 펼쳐내는 신명이고 축제이다. 즐거움과 재미를 신과 나누며 공동체가 모둠을 이루어 사는데 아무 탈 없도록 간곡히 청하는 일이다. 공동체의 안녕과 삶의 풍요로움을 염원하면서 푸진 구정놀이를 펼쳐대는 한판 대동굿이다.

 

길놀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패거리로는 ‘유랑예인집단’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길을 걸으며 유랑하고 예능을 팔고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길은 그들에게 생존의 터전인 것이다. 광대란 길에서 낳아 길에서 살다가 또한 길에서 죽으면, 창부라는 귀신이 되었다가 미친 사람에게 붙어서 정처 없이 헤매게 만든다고 한다. 길에서 놀다가 길에서 죽은 사람은 죽어서도 정처 없이 떠돌게 되며 그래서 ‘길’은 곹 방랑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유랑예인집단은 길놀이를 통해 새로운 길과 관계 맺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며, 공동체가 염원하고 꿈꾸고 바라는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는 홰꾼이다. 그들에게 길은 노동의 현장이며 놀이는 노동 그 자체이다. 따라서 유랑예인집단의 길놀이는 그들 개인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치열한 모습이면서 뭇 민초들의 앞길에 행복을 비는 비나리판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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