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맨이 된 남자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문학창작분야 시범사업 <달콤 쌉쌀한 코코아> 소설 부문 수록
아버지는 변기가 되셨다. 변기에 아버지의 허벅지와 등이 녹아버린 탓이었다. 아버지의 허벅지와 등이 변기에서 떨어질 때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끼니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오는 것 빼고는 모든 생활을 변기 위에서 하셨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아버지는 변기 위에서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끝내고 나면 책을 읽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버지는 며칠 내내 그 책을 읽고 계셨다. 다음 장을 넘기다가도 다시 이전 페이지로 넘어와 다시 읽고, 그 다음 장을 넘기다가도 다시 전전 페이지를 다시 들추었다. 아버지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아버지는 요새 변기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저 잠깐이면 되는데 자리 좀 비켜주시면 안 돼요?”
처음에는 베란다에서 싸. 대꾸라도 해 주던 아버지는 이내 나의 말을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결국 집에서 뛰쳐나와 아파트 단지 내의 미니 정원에서 똥을 쌌다. 똥을 싸는 내내 풀들이 나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다. 하지 마, 이 성희롱 범죄자들아!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쥐어 짜 남아 있던 똥을 세상 밖으로 탈출 시켰을 때, 나는 딱 기절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영이가 나를 커다란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정원에서 미친 듯이 뛰어와 변기 위에서 스테인리스 그릇을 껴안고 비빔밥을 퍼먹고 있는 아버지를 확인 했을 때, 아버지 멱살을 쥐고 변기 위에서 끌어내고 싶었다. 아버지가 딱 죽기 직전까지 아버지를 후려 패고 싶었다. 이런 패륜적인 욕망을 품은 것은 단언컨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한 입을 싹싹 긁어 모으고 있었을 때, 변기에서 쪼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섭취와 동시에 배출이라니. 아버지의 장이 사실 일자형인 건 아닐까. 진심으로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이었다.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아버지가 변기가 되기 전에 집을 나갔다. 혹시 아버지가 변기가 된 이유는 엄마 때문이 아닐까? 엄마, 엄마 때문에 아빠가 죽어버렸어. 변기가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내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는 잘 지내? 응, 엄청나게 지내. 어떻게 지내기에?
“변기가 되었거든.”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뭐? 병기? 엄마가 소리쳤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병기가 맞기도 했다. 지금 아버지 앞에 말 잘한다는 버락 오바마를 데려다 놓아도 아버지는 아무 말 않고 꿋꿋이 듣고 있을 터였다. 가장 험하다는 미국 하렘가의 양아치를 데려다 놓고 모욕적인 말을 퍼부으라고 해도 아버지는 미동조차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변기니까. 그 전에, 아버지가 영어를 할 줄 알았던가?
“아니 변기. 아빠는 고장 난 변기가 되어버렸어.”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아빠를 버린 건 엄마잖아. 찔리기라도 하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하니, 아버지가 왜 변기가 되었는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단순히, 엄마 때문인 것일까. 아버지는 왜? 언제부터? 종이 한 가운데에 변기를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아버지. 접점은 아무 것도 없었다. 왜 하필 변기여야만 했을까. 슈퍼맨도 있고 배트맨도 있는데 아버지는 왜 하필 변기맨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때였다. 덜컥. 어딘가 이프로 부족한 변기레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크르릉- 변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쿨렁쿨렁. 무언가에 의해 가로 막힌 소리만 들렸다. 변기가 고장이라도 났나? 아버지는 내려가지 않는 변기 물에 놀라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나는 변기의 이상증세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또다시 문제. 변기는 언제부터 고장이 났나? 우리 집의 하나뿐인 변기가 고장이 났다. 그동안 싸고 쌌던 아버지의 똥 때문일까? 아니, 아버지는 항상 볼일을 보고 나면 변기 레버를 돌리니 그 전부터 고장이 났을지도 몰랐다. 엄마가 떠났을 때부터? 아니면 그 전날? 그것도 아니라면 아버지가 넥타이를 매야 할 이유가 사라졌을 때부터? 변기가 언제 고장 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변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 뒤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몸 속에서 배출을 하고 나면 항상 덜컥. 변기 레버를 습관처럼 돌렸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행동 중 하나라고 여겨졌다. 쿨렁쿨렁. 변기 레버를 돌릴 때 마다 가래가 잔뜩 낀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물은 내려가지 않았다. 변기는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기 속엔 아버지의 똥과 오줌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기능을 상실한 변기와 넥타이를 매야 할 이유가 사라진 아빠. 무언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가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아버지는 변기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반쯤 감긴 눈에서는 흰자위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잘게 끄덕이다가도 방심하면 팍! 꺾어버리는 아버지의 목에, 저러다 부러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났다. 아버지, 여기서 주무시지 마시고 방에 가서 주무세요. 예? 아버지는 말없이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드디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린 것일까. 쾌재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아버지는 베개와 이불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설마. 설마요. 아버지는 화장실 타일 위에 누웠다. 아버지는 갑자기 엄습한 타일의 차가움에 몸을 잘게 떨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 나는 아버지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변기 앞에, 침대가 새로 생겼다. 아들, 불 좀 꺼라. 탁. 내일은 꼭 근처 대학병원의 정신과 전화번호를 알아 봐야지. 덜컥. 아버지가 자는 틈을 타 변기레버를 내려 보았다. 나는 무얼 기대했을까. 물은 내려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배가 고프다는 나의 말에 앉은뱅이 책상을 들고 오셨다. 간만에 보는 아버지의 서 있는 모습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책상 위에 그려진 토마스 기차캐릭터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뭘 봐, 이 자식아. 토마스의 웃는 얼굴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근데 아버지, 이 책상은 갑자기 왜 꺼내 오신 거예요? 아버지는 책상을 화장실 문 바로 앞에 내려놓았다.
“밥 먹자.”
식탁이 새로 생겼다. 아버지는 변기 위에서,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부자지간의 사이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 전 아버지 때문에 변기에 앉는 기분이 어떤 지 까먹은 것 같아요.”
여전히 변기 위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토마스의 얼굴 위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하고 말했다.
“변기 위에 앉는 기분은 어때요?” “중력을 버티는 느낌이야.”
아버지.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 저도 중력을 버티는 중인데요. 대체 아버지가 말하는 중력은 뭔데요? 아버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능숙하게 재를 떨었다. 변기 위에서 담배를 피울 때 담뱃재를 다리에 잘못 떨어뜨려 비명을 지르던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요. 저처럼 뭔가 까먹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래, 뭔가 잃어버렸긴 하지.”
훅- 아버지는 한숨과 함께 연기를 뱉어냈다. 괜찮아, 변기가 있거든. 화장실에서 내가 앉아 있는 토마스의 얼굴 위까지 담배 연기가 끼쳤다. 아버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뭐라고 그러디? 잘 지내냐고 묻던데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아버지가 변기가 되어버렸다고요.”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담배 연기는 내 머리 위로더욱 짙게 흩어졌다.
학교 양변기 위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갖다 대었다. 근래에 양변기를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쉬는 시간 시작종이 울리고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 양변기에 앉아있어 보았지만 아버지가 말했던 중력을 버티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너희 집에 변기 있지?”
준석이는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며 나를 흘겨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변기맨이야.”
너 미쳤냐? 준석이가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짜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왜 변기맨이 되었더라?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버지는 끙끙대며 똥을 싸고 계셨다. 볼일이 끝난 후, 아버지는 습관적으로 변기 레버를 돌렸다. 그때였다.
크르릉- 두 귀를 의심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방금 맞죠? 들으셨죠? 변기가 울었다. 며칠 내내 감기 열병을 앓다 드디어 훌훌 털고 일어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변기레버를 내리던 동작 그대로 굳어버렸다. 물 빠지는 소리, 물 채워지는 소리.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이 솨-솨-하는 변기의 콧김 소리. 아버지는 느릿하게 일어나 변기 속을 확인했다. 아버지를 따라 변기 속을 쳐다보니, 상상과 달리 변기는 깨끗했다. 더 이상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 변기가 나타났으니. 아버지. 아버지도 이제 정신 차리고 일어나요. 다 끝났어요.
“변기, 변기가 돼야 해.”
순식간이었다. 변기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변기의 콧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은 것은. 출렁출렁. 들이닥친 아버지의 머리에 변기물이 크게 출렁거렸다. 아버지는 자신의 머리가 쉽게 들어가지 않자, 손을 높이 뻗어 변기레버를 돌렸다. 새 변기물이 아버지의 머리를 적셨다. 아버지, 코 안 따가우세요? 코와 귀마저 변기 속에 묻은 아버지는 나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쿵. 쿵. 아버지의 머리는 물의 흐름을 따라 변기에 몇 번 부딪혔다. 지금이다. 미뤄뒀던 질문의 대답을 찾을 때이다.
“아버지, 변기가 되려고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아버지는 고개를 번쩍 든다. 나의 말을 들은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얼굴에 착 달라붙어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는 벌건 눈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셨다. 아버지 뭐 찾으세요? 아버지는 다급하게 베란다 끝의 벽장으로 뛰어간다. 이대로 혼자가 될 수는 없어. 변기가 돼야 해. 아버지가 챙겨 오신 것은, 다름 아닌 망치이다.
“너도 나랑 똑같았잖아!”
깡. 깡. 쨍그랑. 깡. 작은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변기는 두 동강이 났다. 아버지는 이미 죽은 변기를 잘게 쪼개고 있었다. 혼자만 살아남겠다는 거야? 이기적인 새끼! 내가 얼마나 너를 아꼈는데!혼자만 제 살길을 찾아?아버지는 화장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변기 파편 사이로 변기물이 흘러나왔다. 변기가 우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변기가 아닌 아버지가 울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도 고쳐지면 되잖아요. 이 고장 났던 변기처럼요. 돌아오면 쉬운 일 아니에요?”
아버지는 이미 귀가 먹어버린 듯하다. 쨍그랑. 깡. 쨍그랑. 변기가 다 깨지고 나면 아버지가 변기가 되는 것일까?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는 변기. 아버지는 변기가 되기 위해 지금의 변기를 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버지는 꽤 오래 전부터 변기가 되어 왔을지도, 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였을까. 왜 진작 눈치 채지 못했을까. 화장실 휴지통너머로 구겨진 넥타이가 보인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파란색 넥타이. 아버지가 왜 변기가 돼야만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제야 옛날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라는 지위가 가장 잘 어울리던 남자. 자신이 아버지라는 걸 자랑스러워하던 남자. 사회시간에 배운, 가부장적인 성격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던 남자. 남자는 가장이 해야 할 기능을 잃고 고장 난 변기가 되었다. 왜 하필 변기가 되어야만 했을까. 글쎄. 아마도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 제일 위로가 되었던 건 자기와 똑같이 제 기능을 잃은 고장 난 변기가 아니었을까. 지금 남자는,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갖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다. 새로운 변기가 되기 위한, 변기맨이 되기 위한.
식탁 위에 그려진 토마스는 화장실 앞에서 아버지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지금만큼은 토마스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글_ 박다정 “근화여고에 재학 중인 소설 쓰는 여고생 박다정입니다.”
박다정 학생 인터뷰
1. 작품의 소재인 ‘변기’는 어떤 계기로 떠올렸나요? 박다정_ 작년에 저희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이 있었어요. ‘변기도 고쳐야 하고, 가스레인지도 고쳐야 하고, TV도 고쳐야 하고! 아니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변기는 당장 고치지 않으면 안 돼!’라고요. 변기, 가스레인지, TV 셋 다 작동은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기능을 하는 것들이었거든요. 그 중에서 ‘변기는 안 돼!’ 하시는 어머니를 통해 변기를 떠올렸어요.
2. 고장 난 변기에 집착하는 아버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을 것 같아요. 박다정_ 실업을 하신 아버지와 비슷한 시기에 고장이 난 변기. 아버지는 변기를 통해 자신을 봤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자신은 아직 그대로인데 자신의 힘으로 저절로 고쳐지는 변기에게 배신감이 느껴졌을 수도 있고, 변기만도 못하다는 것에 더욱 자괴감이 느껴졌을 수 도 있고. 최근 들어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무작정 손가락질하고 욕하기보다는 왜 그 사람이 이상행동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
'한데 누리 > 헛간·바라보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호 1주기 추모합니다. (0) | 2015.04.16 |
---|---|
봄 비! ...잊지 않겠습니다. (0) | 2015.04.01 |
말 잘하는 사람들의 8가지 말하기 습관 (0) | 2015.02.28 |
하수와 고수의 차이 –강사편 (0) | 2015.02.28 |
글쓰기의 요령 (0) | 2015.0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