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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누리/우리문화 곶간

‘제사 거부’ 핵심은 ‘행복’…“살아있는 개개인 존중 받아야” - 여성운동가 고은광순

by 지암(듬북이) 2016. 2. 1.






‘제사 거부’ 핵심은 ‘행복’…“살아있는 개개인 존중 받아야”

                                                                                                              - 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오랫동안 ‘당연히’ 지켜왔던 것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양반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너나할 것 없이 지키고 있는 제사이지만 그 연원과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제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당연한’ 시각이 새롭게 바뀐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던 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씨가 ‘내 제사 거부 운동’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호주제 폐지로 가족법의 시스템은 달라졌지만 이 시스템에 담겼던 내용물은 여전히 고여 있다는 게 고은 씨의 설명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하던 고은 씨는 몇 해 전 충남 갑사마을로 내려왔다. 몸이 아픈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다는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후 시신을 화장해 수목장으로 지냈다. 그리고 작년 충북 옥천으로 자리를 옮겨 한의원을 다시 열었다.

 

고은 씨가 ‘내 제사 거부 운동’을 시작한 것은 서울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던 2009년 10월부터다. 제사의 부조리함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제사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내 제사’부터 거부하기로 한 것은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서다. ‘제사 거부’를 주장할 경우 호주제 폐지를 주장할 때처럼 대한민국 유림과 남성들이 나서 신랄한 비난과 비판을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러한 반대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제사 문제에 대한 공론화였지 대립과 분쟁이 아니었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B.C. 1300년 전 중국에서 시작한 ‘악습’

죽은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제사는 기원전 1300년 경 중국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쿠데타에서 기인한다. ‘조갑’이라는 사람이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왕이 되기 위해 형을 죽인 뒤 이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시작한 기형적인 문화다. 이 내용을 김경일 교수가 쓴 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1999년)’에서 확인하면 아래와 같다.

 

“왕이 된 조갑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제례 문화의 정비였다. 그는 이전에 있던 모든 토템, 즉 황하신 천신 등에 대한 제례를 폐지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직계 혈족들의 제례만을 강화했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인위적 문화혁명으로, 유교 문화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유교 문화의 핵심 내용의 하나가 바로 조상에 대한 제사이기 때문이다.…어쨌든 조상신을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신령으로 삼겠다는 이 행동은 당시의 종교 문화적 행태들을 볼 때 여간 돌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조갑과 그의 신하들은 우선 자신들 조상들의 족보를 재수정했고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례화했다. 이것은 주변 부족들에게 자신들이 조상이 모든 토템과 샤머니즘적인 숭배 대상들을 초월한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한 대단히 정치적인 전략이었다. 유교 문화의 족보 만들기, 족보 캐기 등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자신의 씨족·혈통 우월 의식 또한 여기에 뿌리를 둔다. 또 그들은 수시로 수많은 제물(대부분 소와 양)을 동원해 전쟁의 승리나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를 진행했다. 이렇게 조상신은 거듭되는 제례와 정치적 설계를 통해 권위가 축적되어갔다.”

 

고은 씨는 “조갑이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상신 제사를 시작 한 이후 폭력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이들은 조상신을 섬김으로써 쿠데타를 정당화시켰다. 태조 이성계 역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조상을 신격화함으로써 자신의 혈통이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것임을 강조해 쿠데타의 정당한 명분을 삼고자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조선 중기 주자학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면서 양반 계급으로 조상제사 문화가 확산됐고, 이를 통해 지배계급은 ‘혈통’의 우월함을 강조함으로써 위계질서를 잡았다. 평민이 제사를 지낼 경우에는 곤장을 때려가며 막았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등 제사 예법이 까다로운 것은 이미 3300년 전에 시작된 ‘차별화’ 전략을 위한 것이었다. 양반계급은 이러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례를 통해 문화권력을 독점함으로써 평민의 도전을 원천차단하여 계급적 안정을 꾀했다.

 

양반들이 독점하던 제사가 계급과 상관없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다. 아래는 고은 씨의 설명이다.

 

“일제가 인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호구조사를 하고 호주를 중심으로 가솔을 등록시키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 족보가 제일 많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일제 강점기다. 당시 성이 없었던 평민과 상민들은 자신의 성을 김·이·박으로 만들어 양반인 척했고, 조상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양반은 양반대로 ‘내가 오리지널 양반이다’는 것을 드러내려 열심히 제사를 지냈고, 가짜는 가짜임을 감추기 위해서 열심히 제사를 지냈다. 부끄러운 과거다. 이 과정에서 양반의 이데올로기인 ‘허세’가 그대로 가족 문화에 숨어들게 되었다.”

 

망자의 제사에 집착하느라 산 사람이 더 힘들어

일제강점기에 호주제가 등장해 아들이 호주 승계 1순위가 되면서 아들의 지위가 어머니의 지위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과 ‘가문과 혈통을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호주제와 제사로 엮어진 가족 문화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한없이 낮아졌다.

 

2000년대까지도 여아를 낙태하는 일이 발생했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가족 문화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제사는 비겁하고 비굴한데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것이 남성 중심의 가족 문화 속으로 파고들면서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고은 씨는 “시집 온 며느리의 지위는 그야말로 가장 바닥이다. 며느리는 가장 먼저 다음 제사를 이을 아들을 생산해야 하고, 명절이나 제사 때 시집에 와서 노동을 해야만 한다. 남성은 이런 시스템을 통해서 권위를 찾으려 하는데, 명절 이혼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웬만큼 ‘드센 여자’라도 시집에 가서는 이렇다 할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명절, 제사문화는 남성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복되는 이벤트다”고 지적한다.

 

만약 어느 집 맏며느리가 ‘나는 제사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겠다’ ‘제사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하면 그의 뜻을 존중할 시댁이 얼마나 있을까. 고은 씨의 말 대로 당장 험한 공격이 난무할 것이다. 남편은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압박을 당하고, 아내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느끼면서 부부관계는 극단적으로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며느리는 가슴에 참을 인(忍)을 새겨가며 버티지만 나이가 들어 자신이 시댁의 중심이 되고 남성의 권력을 쥐게 되면 며느리에게 똑같은 고통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은 씨는 바로 이 악순환을 이어갈 필요가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사가 조상을 기려 복을 받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주장하지만 고은 씨는 이것이 “사라져야 할 폐습”이라고 강조한다. 무엇이 폐습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전통인지를 나누는 기준은 ‘행복’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오랫동안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전통이다. 하지만 도구화된 여성들의 불만을 모른척 하면서,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것은 마비된 이성에 의한 폐습에 불과하다. 제사도 그것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게 고은 씨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죽은 사람은 동전 하나 들 힘이 없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절대로 후손을 잘 살게 해줄 수 없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후원하고 위정자를 제대로 뽑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다”고 말한다.

 

‘제사 거부’ 핵심은 ‘행복’…“살아있는 개개인 존중 받아야”

 

이와 함께 고은 씨는 명절이나 가족 모임의 중심이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음’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항상 ‘죽음’이 중심이 된다. 그렇다고 조상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거나 생전의 음덕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살아있는 것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면서 형수의 생일도 모르는 것이 우리 가족의 현주소 아닌가. 가족과 친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족오락관·가족운동회 등을 하며 가족끼리 애틋한 정을 나누는 것이다. 제사 문화는 일부 여성이 ‘나쁜 년’ 욕을 들으면서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이성을 합리적으로 일깨워 가족 문화를 진보시키는 과정에서 자연히 사라져야 한다.”

 

고은 씨는 살아 있는 사람이 서로 존중하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와 선조를 존중하고 섬기는 길이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개개인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10대 조상 더 나아가 20대 조상으로부터 유전자를 조금씩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를 존중하는 것이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그 선조를 섬기는 것이다. 상호존중이 몸에 익지 않으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자신도 진화하지 못하고 미숙한 채로 사는 것이다. 옆에 있는 부인을 무시하고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하면서 죽은 사람을 받든다는 것은 넌센스 아닌가. 제사 원조국인 중국에서도 이미 사라진 전통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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