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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누리 /문화유산 나들이

남하리석조미륵보살입상

by 지암(듬북이) 2016. 3. 24.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 남하리 미륵마을에 있는 미륵보살입상으로 아랫부분은 땅 밑에 묻혀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미륵마을 옆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사찰에 있었는데, 사찰이 이 미륵불 때문에 번창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불상을 넘어뜨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이런 일로 해서 본래는 보개석을 머리에 얹었다고 생각되나 지금은 없다. 이후 1949년 속리산 법주사의 승려 월인(月印)이 마을 뒤편에 성주사(聖住寺)라는 절을 짓고 쓰러진 이 불상을 다시 세우고 마을의 수호부처로서 보호하였다고 전해진다.

전체 높이는 350㎝로, 대형의 불상에 속한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머리 부분이 상당히 큰 편이며 두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어깨가 좁고 몸은 양감없이 편평하여 전체적으로 길쭉한 사각형의 형체를 보인다. 듬뿍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은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돋을새김하였다. 오른손은 배 위에 붙였고 연꽃을 쥔 왼손은 가슴에 올려놓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미륵도상이 유행하였기 때문에 고려의 미륵보살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통견 형식의 보살의(菩薩衣)는 두 팔에 걸쳐 흘려 내리고, 가슴 부분이 넓게 벌어지게 표현되었으며 배 아래에서 활모양의 주름이 조각되었다. 대부분 보관을 쓴 보살상은 천의(天衣) 형식을 착용하지만 이 보살상은 불의(佛衣) 형식을 착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보살이면서 불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미륵보살의 신앙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보살이 불의 형식의 옷을 착용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으로 동일한 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접하고 있는 증평 미암리사지 석조관음보살입상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지역적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옷의 모양이나 수인, 그리고 얼굴 등에서 보이는 모습과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 이후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편, 왼쪽에 세워져 있는 1.3m~1.5m 높이의 작은 불상들은 미륵보살상과 함께 옮겨 세워진 것이다. 하나는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작은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를 양각으로 표현하여 돌출하고 있으나 상호를 시멘트로 보수하여 그 원형을 알 수 없다. 수인(手印)은 파손이 심하여 확실하지 않지만 합장을 한 듯 보인다. 다른 것은 거의 보수하여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다. 2구 모두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미륵불보다는 후대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보살상은 불의 형식을 착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보살이면서 불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미륵보살의 신앙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지역적인 특색이기도 하다.

 

이 미륵보살입상은 옷의 모양이나 수인, 그리고 얼굴 등에서 보이는 모습과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 이후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고려시대 미륵보살의 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증평 지역의 불교신앙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작품이 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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