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34호.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큰 개울을 이루는데, 개울 중간에 돌과 흙이 모여 삼각주를 이루니 배의 형국 같은 섬이 되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중앙에 엄청나게 큰 기와집이 있으니 여기가 인근에서 제일 가는 부잣집이다. 또한 이웃의 영재들을 뽑아 사비를 들여 교육시킨 선각자의 집으로 소문난 선(宣)씨 댁이다.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에 당대 제일의 목수들을 가려 뽑아 후하게 대접하면서 이상형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요긴하게 이용될 공간이 집안에 망라되도록 설계하였다. 이 시기에는 개화의 물결을 타고 이른바 개량식 한옥의 구조가 시험되던 때였다.
그래서 재래식 한옥으로 질박하게 짓기보다는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해 본 것이다. 이 집은 그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특성 있게 지어졌으므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80년에 큰물이 져서 일대가 침수된 적이 있었는데, 이 때에 돌각담들이 무너져서 아늑하며 유현하던 분위기는 많이 흩어지게 되었다. 대문 맞은편에 돌각담을 두른 일곽이 있고 그 안에 여러 채의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6·25사변 이후 무너져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대문은 솟을대문이고 행랑채가 좌우로 섰다. 대문간까지 합쳐 단칸통의 32칸 규모이다. 행랑채는 여러 굽이 꺾이는데 그 끝은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채에 이어진다. 중문은 솟을삼문형이다. 사랑채는 남향하였고 무사석같이 다듬은 세벌대 위에 자리잡았다.
평면은 H자형의 2칸통인데 앞, 뒤퇴가 있어 더욱 넓은 공간이 되었다. 기둥은 퇴기둥이 둥근 원주(圓柱)이고, 고주들은 방주(方柱)이다. 퇴기둥의 주초는 화강암을 다듬은 팔각이다.
이런 구조는 보통의 사랑채에서는 보기 드물다. 처마는 홑처마이나 서까래가 길어서 처마 깊이는 상당히 깊다. 안채는 사랑채의 서쪽에 있으면서 서향하였다. 무사석 두벌대 위에 자리잡았는데 평면은 역시 H자형이다.
중심은 네 칸의 대청이다. 이 대청에서 앞퇴와 뒤편 쪽마루로 나서면 어떤 방으로도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대청 좌우의 방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부엌도 아주 넓은 공간을 차지하였는데 머리 위로 다락이 시설되어 있다. 역시 홑처마이며 처마깊이는 깊다.
사당채 일곽은 뚝 떨어진 자리에 있다. 낮은 담장을 두르고 삼문을 열어 출입하게 하였다. 사당은 세 칸이고 옆에 재실 세 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곳곳에 붉은 벽돌과 시멘트를 쓰고 벽체는 외식에 따라 하얗게 분벽(粉壁)하여 옛집에서 느끼는 따뜻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한데 누리 > 문화유산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평민속체험박물관 (0) | 2016.03.24 |
---|---|
초정약수 (0) | 2016.03.24 |
외암민속마을에서 - 2011년 10월 8일 (0) | 2016.03.06 |
명암약수 (0) | 2016.03.03 |
한봉수 의병장 유적지 (0) | 2016.0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