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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누리/국악 나들이

널뛰기

by 지암(듬북이) 2017. 2. 1.



` 두명이 짝이 되어 양 손을 마주잡고 선다.

`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친구가 먼저 양족 다리를 벌리면서 하늘 높이 뛰고 그 다음에 진 친구가 뛴다.

` 이긴 친구가 "아가리 딱딱 벌려라" 노래를 메기면 진 친구는 "설날 떡국 들어간다" 노래를 받으면서 활동한다.

` 사전에 충분하게 활동한 다음, 모둠으로 널뛰기 놀이를 한다.

` 전체적인 호흡이 맞아야 하면 먼저 뛰거나 늦게 뛰는 친구는 널뛰기에 떨어지는 놀이의 규칙을 정한다.











 

널뛰기

 

정초에 여자들이 둘로 나뉘어,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 답판(踏板)·도판(跳板)·초판희(超板戱)·판무(板舞)라고도 한다. 승부는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어 널에서 떨어질 때에 정해진다. 주로 정초에 놀지만, 경우에 따라 정월 대보름, 첫 용날(상진일,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정월 16일 귀신날(경기도 지역)과 같이 특정한 날로 국한되기도 한다.

 

널뛰기에 관련된 몇 가지 설이 내려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옛날 죄를 지은 두 남자가 옥 속에 갇혀 있었다. 이들 부인 중 한 사람이 옥에 갇혀 있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다른 죄인의 아내와 공모하여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 옥에 갇혀 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엿보았다고 한다.

 

둘째, 옛날에 담장 안에 묶여 있던 부녀자들이 세상 밖을 보고 싶어서 널뛰기를 하여,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 보았다고 한다.

 

셋째, 널을 뛰면 시집가서 아기를 잘 낳는다. 반대로 처녀 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한다.

 

넷째,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년 중 발에 가시나 못이 찔리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섯째, 귀신을 쫓기 위해서 널을 뛴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포천군 일동면 유동리, 김포시 통진읍,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서는 1월 16일 귀신날에 널을 뛰는 것을 귀신 대가리 깬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 옥에 갇힌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아내가 옥 밖에서 널을 뛰었다거나 담장 안의 부녀자들이 세상이 궁금하여 널을 뛰었다는 설은 호사가들에 의해 후대에 형성된 설화라고 볼 수 있다. 담 안에서 생활한 부녀자들은 양반 사대부 집안 여성에 한정된 극소수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발바닥 단련을 통해 건강한 발의 유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섯 번째는 귀신날에 잡귀를 쫓고 부정을 없애기 위한 축귀적(逐鬼的) 성격을 보여준다.

 

널뛰기의 역사는 명확하지 않으나, 매우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정조 때,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여염집 부녀자들이 몇 자 높이로 올라가며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데, 이를 ‘초판희(超板戱)’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황(周煌)의 『유구국기략(琉球國記略)』에는 유구의 부녀자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판무라 하고, 이것이 조선 초에 유구인들이 조선에서 배워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미 고려시대에 널뛰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순조 때의 이낙하(李洛下)가 지은 ‘답판사(踏板詞)’에는 널뛰기를 답판놀이라 하며, 정초부터 2월까지 노는 놀이로, 높이 솟을 때는 3척(尺)에 이른다고 기술하고 있다.

 

널을 뛰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양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에서는 보통 양쪽에 한 사람씩 2인이 뛰는데, 한 사람이 가운데에 앉아서 균형을 잡아 준다. 몸무게가 맞지 않을 때에는 몸무게가 적은 사람에게 널을 많이 주어 균형을 이루는데, 이것을 밥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널을 뛰는 사람에게 1미터 정도의 헐거운 줄을 3가닥으로 묶어준다.

공중동작도 다양한데 한쪽 다리 벌리기, 양쪽 다리 벌리기, 다리 앞으로 뻗기, 치마로 받는 시늉하기 등이 있다. 충남 청양지방에서는 한쪽 다리를 대문 쪽으로 벌리며 “밥상 들어간다.”고 말하며, 양쪽 다리를 벌리는 경우에 “대문 열어라.”고 소리지른다. 북한 문헌에 의하면, ‘중등 꺾는다.’고 하여 허리를 뒤로 한 번 굽혔다가 내려오기도 하며, ‘데사리’라 하여 뛰어올라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오는 숙련된 기술도 있다.

한편, 강원도의 경우에는 널을 뛰는 사람이 오래 뛰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 치마를 벌리고 “싸래기 받아 개주자.”, “싸래기 받다 죽 쑤자.”, “치마 가지고 싸래기 받는다.”, “쌀 한 되 주, 팥 한 되 주” 하고 놀리기도 한다. 이때 널뛰는 사람이 웃다가 떨어지면 다른 사람과 교대한다. 승부는 한 쪽이 힘껏 굴러서 상대편을 널에서 떨어뜨리게 이긴다. 개인간의 승부도 가능하고, 두 편으로 나누어 승부를 가리기도 한다.

놀이에 사용되는 널의 크기는 대체로 길이 2~2.4미터, 너비 30센티미터, 두께 5센티미터 가량으로, 지방에 따라서 널 양쪽 끝 부분의 땅을 파기도 하고 널이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 가운데에 사람이 앉기도 한다.

널뛰기는 힘이 많이 들고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우며, 널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잦아 서로 교체해 가며 뛰어야 한다. 혼인 전의 여성이나 결혼 초의 젊은 부녀자들이 많이 뛰었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내동에서는 특이하게도 여자들이 낮에는 거의 뛰지 않고 밤에 뛰었다.

 

널뛰기 민요

널을 뛰면서 다양한 유희요가 삽입된다. 조선시대 유만공(柳晩恭)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 보면 “널뛰는 아가씨들 울불불긋 차렸구나. 뛰고 굴리어 서로 높이 오르려고 담 넘어 얼굴 뵈는 것 부끄러운 줄 모르네.” 하고 노래를 불렀다.

함흥지방에는 “허누자 척실루 늬 머리 흔들 내 다리 삽작 허누자 척실루 늬 눈이 휘휘 내 발이 알알 허누자 척실루 늬 당기 욜랑 내 치마 랑럭 허누자 척실루 늬 눈이 휘휘 내 발이 알알”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안동지방의 민요에는 “묵은해는 지나가고 새해 설날 맞이했네. 앞집의 수캐야 네 왔느냐 뒷집의 순이야 너도 왔니만복무량 소원 성취 (후렴) 널뛰자 널뛰자. 새해맞이 널뛰자. 금년 신수 좋을시구 서제도령 공치기가 널뛰기만 못하리라 (후렴) 널뛰자 널뛰자. 새해맞이 널뛰자. 규중 생장 우리 몸은 설놀음이 널뛰기라 널뛰기를 마친 후에 떡국놀이 가자세라. 널뛰자 널뛰자 새해맞이 널뛰자.” 하는 내용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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