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친구들이 새해의 대문을 힘차게 열고
올 한해도 황금 멍멍이처럼 신나게 놀고,
마음껏 표현하고 재잘대며 건강하게 자라길 희망합니다.^^
대문놀이
문뚫기·문열기’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 주로 달밝은 밤에 행하여지며, 전라도지방에서는 한가윗날 <강강술래>와 함께 놀이되기도 한다. 놀이방법은 대체로 두 패로 나누어 노는 방법과, 패를 가르지 않고 문지기 두 사람만 정하여 노는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은 20∼30명의 아이들이 모여 패를 가른 뒤 같은 패끼리 손을 잡고 일직선이나 반원형으로 늘어선다. 양쪽 선두가 가위바위보를 하여 진 편에서 두 줄로 늘어서서 맞은편 사람과 서로 손을 잡아 문을 만든다.
이어서 상대편에서 “대문을 열어라.” 하면, “열쇠가 없어서 못 열겠다.”고 대답한다. 다시 상대편에서 “열쇠를 줄께 열어다오.” 하면, “그럼 열어줄까.” 하는 문답을 되풀이한다.
문답이 끝나면 이쪽 편의 선두가 맞은편 사람과 잡은 손을 높이 들어 문을 열면, 상대편은 각기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고개를 숙여 문 밑으로 빨리 빠져나가려 하고 문을 만든 편은 도중에서 팔을 내려서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줄이 끊어지지 않고 모두 빠져나가면 이긴다. 한편, 줄을 끊기 위해서는 약한 아이가 지나갈 때나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지나가는 아이가 있으면 문을 탁 내려서 걸리도록 한다.
이 밖에도 놀이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같은 편끼리 손을 잡고 상대편의 팔 밑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양손을 맞잡고 앉아 있는 상대편의 팔위를 뛰어넘기도 한다. 이때 뛰어넘지 못하고 걸려서 줄이 끊기거나 팔 밑으로 빠져나갈 때 걸려서 줄이 끊어지면 지게 되어 역할을 서로 바꾸게 된다.
두 번째 방법은 문지기 두 사람만이 손을 맞잡아 올려 문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고 구부린 채 빠져나간다.
놀이꾼 전원이 빠져나가면 그 다음 사람이 문지기가 되어 놀이가 계속된다. 이때 “동동동동 동대문/동대문을 열어라/남남남남 남대문/남대문을 열어라…….”와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노래가 끝날 때 팔을 내려 문을 닫아 이때 잡힌 사람이 문지기가 되기도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지기 놀이
두 어린이가 양팔을 뻗쳐 서로 잡아 문같이 만들고 그 밑을 어린이들이 꿰어가는 놀이. 문지기놀이는 지역에 따라 문열어라놀이, 대문열기, 대문놀이, 남대문놀이라고도 한다.
추석날 하는 강강술래 놀이에서 문열어라놀이라고도 하여 남생아놀아라, 지와밟기, 도굿대당기기 등의 여흥놀이와 함께 어울려 놀아지는 한편, 독자적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확산된 놀이이기도 하다. 먼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팔을 벌려 문을 만든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고 구부린 채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주소”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문 밑을 꿰어간다. 이때 문지기가 된 두 사람은 “열쇠없어 못열겠네”라고 대답한다. 아이들 전원이 꿰어 가면 그 다음 사람이 문지기가 되어 놀이가 계속된다.
그러나 전남 진도에서는 약간 다르게 한다. 허리를 잡은 놀이꾼들이 문을 꿰어갈 때 급히 두 팔을 내려서 못 지나가게 막는다. 이때 앞사람의 허리를 껴안은 손을 놓쳐서 떨어지면 그 사람이 문지기가 된다. 그러므로 문지기가 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하여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문지기놀이의 ‘문’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기를 상징하는 사물로서, 그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성행위의 상징이며, 남녀의 결합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대하는 풍요 기원의 유감주술적인 성 행위 굿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1. 이야기활동
1)대문에 관한 세시풍속
` 복조리 풍속
설날 이른 아침에 장만하여 벽에 걸어놓음으로써 한 해의 복을 빌었던 세시풍속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로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든 것인데, 정초에 새로 장만하는 조리를 특별히 복조리라 하였다. 복조리는 있던 것을 쓰지 않고 복조리 장수에게 산 것을 걸었는데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섣달그믐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 장수들이 “복조리 사려.”를 외치며 인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주부들은 다투어 복조리를 사는 진풍경을 이루었다. 복을 사는 것이라 여겨 복조리 값은 깎지도 물리지도 않았다. 일년 동안 사용할 수량만큼 조리를 사서 실이나 성냥ㆍ엿 등을 담아 문 위나 벽 등에 걸어두는데, 이는 장수와 재복을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우리 민요 ‘달거리창부가’에는 “12월은 막달이라 빚진 사람 졸리는 때 해동(海東) 자시 지내고 보니 섣달그믐이 그대로다. 복조리는 사라고 하되 임 건지는 조리는 없구나.” 하고 복조리 풍습을 읊고 있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한 해의 복이 쌀알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와 함께 농경민족의 주된 곡식인 쌀을 다루는 도구로서 더욱 중시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나무를 엮은 틈새가 눈[目]이 많은 것으로 여겨져, 광명을 통해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상징성을 아울러 담고 있다.
돌을 걸러낸 쌀을 판매하여 조리가 실생활에 필요하지 않게 된 근래에도 정초에 담 너머로 복조리를 던져 놓고 다음날 돈을 받아가는 옛 풍습을 볼 수 있으나, 설날 복조리 장수들이 직접 판매하러 다니는 풍습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장식품으로 여겨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세화
세화(歲畵)를 주고받는 풍속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정확한 유래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까지는 연말 연초 재앙을 막기 위해 문에 붙였던 문신(門神)과 연관된 연원을 가진 것으로 본다. 문배(門排)는 제석(除夕)에 잡귀를 쫓고 새벽이 되면 대문에 문신상(門神像)을 붙여 잡귀들이 드나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풍습으로 중국 남방의 농경적 무(巫)문화인 나례(儺禮)와 연관된 것이다. 이러한 나례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문배와 더불어 세화풍습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전하는 문헌을 살펴보면, 문배와 세화는 대체로 구별해서 쓰이고 있고 그려지는 형상도 차이를 보여 세화의 유래에 관해서는 보다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신년에 서로 그림을 선물하는 풍습은 있었으나, 이 시기에 이르면 민간에서 그림의 수요 및 공급이 활발해지고 인쇄 그림의 범람 등으로 세화를 특별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세화풍습이 연하장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정월대보름의 대문굿(지신밟기)
대문굿은 상쇠의 사설로, 지신밟기패가 집안을 나서기에 앞서 상쇠가 집안을 축복하는 고사소리를 하는 과정이다.
` 입춘축
입춘날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 입춘(立春)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자 봄을 맞는 날이므로 이날 봄의 형상에 적합한 축하·기원·경계 등의 글을 쓰는데, 이를 입춘축(立春祝)·춘축(春祝)이라 한다. 그리고 종이를 잘라 좋은 글을 쓰고 입춘일에 각 집마다 대문이나 기둥 등에 붙인다고 하여, 입춘첩·춘첩·춘첩자(春帖子)·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문첩(門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立春)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문이나 기둥마다 대구의 글을 지어 붙인다고 하여, 춘련(春聯)·대련(對聯)·문대(門對)라고도 한다.
오늘날에도 ‘입춘대길 건양다경’ 같은 입춘첩을 써두었다가 입춘에 책력(冊曆)에 나와 있는 시간에 맞추어 대문이나 기둥 등에 붙인다. 먼저 사당에 가서 입춘이 왔음을 고하는 ‘감고(敢告) ○○년(年) 입춘(立春) ○○월(月) ○○일(日) ○○시(時)’의 입춘축을 붙이고, 이어 집의 구조와 기능에 따라서, 대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중문에는 ‘문신호령 가금불상’과 ‘신도울루’, 기둥에는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 아버지 방에는 ‘부주평안(父主平安)’, 어머니 방에는 ‘모주평안(母主平安)’, 곳간에는 ‘의이장지(義以藏之), 절이용지(節以用之)’ 등 각각의 기원문을 써서 붙인다.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 입춘첩을 붙이지 않는다.
` 단오
단오에 쑥호랑이를 만들어 잡귀를 막는 것은 단오, 쑥, 호랑이 세 가지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곧, 쑥호랑이는 쑥의 정화력과 범의 용감함을 결합시켜 두 배의 강력한 힘을 지닌 벽사물이 된다.
단오는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로 더위를 피해 독을 지닌 뱀, 거미, 전갈, 지네, 개구리 같은 일명 오독(五毒)이 집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독이 싫어하는 쑥, 마늘, 창포 같은 강한 향기를 내는 식물들을 대문에 걸거나 한쪽에 다발을 세워 접근을 막았다. 이처럼 쑥은 강한 살균력과 독한 향기를 가지고 있어 정화하는데 많이 쓰인다.
한편 범은 잡귀를 쫓는 벽사물로 자주 등장한다. 새해를 맞아 각 가정에서는 범과 용의 그림을 문이나 벽에 붙인다. 이와 같은 풍속은 『동국세시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호랑이 그림을 문에 그리는 풍속은 중국 춘추시대 때 이미 나타난 것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문(說文)』에는 호랑이가 산군으로 나타나 있으며, 『풍속통의(風俗通義)』 권8 화호조(畵虎條)에서는 “호랑이는 양생의 동물이요 백수의 왕으로서 능히 벽사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민간에서는 말라리아나 콜레라가 발생할 때 호랑이 그림을 문에 붙이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민가(民家)에서는 호랑이뼈를 문에 걸어두기도 하는데, 이는 짐승의 왕인 범을 보고 잡귀가 달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새로 문을 달거나 새 가구를 사면 그곳에 왕(王)자를 쓰기도 한다. 여기서 ‘왕’자는 단순히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호랑이를 상징한다. 중국 절강성 지역에서는 설[正月]이 되면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인다. 호랑이 그림이 마련되지 않은 집에서는 대문에 ‘왕’자를 쓴다. 호랑이 이마에 생긴 주름살이 ‘왕’자이므로, ‘왕’자만 써도 곧 호랑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겼다. 중국의 호랑이 인형이나 그림을 보면 이마에 모두 ‘왕’자가 새겨져 있다. ‘왕’자가 호랑이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수릿날 풍속에서도 볼 수 있다. 이날 어린아이의 이마에 웅황주(雄黃酒)로 ‘왕’자를 그리는데, 그러면 오독이 호랑이[王]를 보고 어린아이에게 덤벼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호랑이를 돌로 새겨 대문이나 무덤 입구에 세워놓기도 하는데, 이것이 죽은 사람의 순장품이 되어 죽은 자의 혼령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무덤 무인석의 갑옷, 대(帶)에도 호랑이를 새겨 용맹스러운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기도 한다.
` 추석 - 거북놀이
음력 8월 15일 한가윗날에 수숫잎으로 거북 모양을 만들어 쓰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노는 민속놀이.
*문굿: 만복과 재화가 대문을 통해 꾸역꾸역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문굿은 “들어가오 들어가오. 만인간 들어가오. 문여시오 문여시오. 수명장수 들어갑니다.” 하는 상쇠의 문굿풀이에 이어 거북이를 앞세운 놀이패 일행이 춤을 추며 문안으로 들어가면 주인이 나와 반갑게 맞이한다.
` 동지
동지가 되면 설날 대문에 붙이는 문배(門排)와 마찬가지로 동지부적(冬至符籍)을 붙여서 잡귀를 쫓는 풍속이 전해온다. 이것은 그해의 시작이 되는 날 문에 부적을 붙이면 일년 동안 벽사초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믿음에서 만들어진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동지팥죽으로 잡귀를 물리치는 행위도 동지부적과 같은 속성을 지닌 풍속이다.
동지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에 놓아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에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잡귀를 몰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지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다.
-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2) 문지기에 대한 이야기활동과 구연활동
문지기: 문을 지키는 사람
수문장
조선시대 도성과 궁궐의 문을 수위하던 무관직.
초기에는 모든 궁성의 문을 호군 가운데 당번을 정하여 지키다가, 1469년(예종 1) 5월 별도로 수문장을 두어 책임지고 날마다 문을 지키게 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서반의 4품 이상을 왕에게 추천하여 낙점을 받아 임명했다.
〈속대전〉에서 수문장이 별도의 정직으로 되면서 새로 서반관아인 수문장청을 설치했다. 관원으로 참상관 5명, 참하관 18명 모두 23명을 두었다가, 〈대전회통〉에서 6명을 늘여 참상관 15명, 참하관 14명으로 모두 29명을 두었다. 수문장청 외에 각 전(殿)에도 수문장을 두었는데, 조경묘·경기전·선원전 종9품 각 1명, 화령전에 종9품 2명을 두었다.
조경묘·경기전·선원전의 수문장은 왕실계통의 전주이씨로 선전관 또는 부장의 천거를 받은 자를 종친부에서 돌아가며 추천하여 병조로 옮겨서 상신하게 하고, 화령전의 수문장은 수원초관에 근속한 자로서 병조에 단일후보자로 추천하여 임명했는데, 모두 재직기간 30개월이 되면 6품으로 올려주었다
수문장 교대의식과 취타대
http://blog.daum.net/04nuri/2862729
2. 대문놀이 노래 부르기
- 노랫말에 어울리는 표현과 함께 노래 부르기
- 짝꿍과 양 손을 마주잡고 무릎 굴신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3. 놀이 활동
두 명이 만든 대문을 통과하는 놀이와 대문을 계속 만들어 가면서 하는 대문놀이, 모둠으로 나누어 시합 놀이도 한다.
- 친구들이 잘 아는 동대문 노래와 엮어서 놀이한다.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동대문에 들어가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
12시가 되며는 문이 닫힌다. 쾅!
'아이 누리 > 국악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멧돼지 놀이 (0) | 2018.01.12 |
---|---|
통영개타령 (0) | 2018.01.10 |
동지의 놀이.2 - 이랑타기(삼팔선, 강 건너기) (0) | 2017.12.23 |
동지의 놀이 (0) | 2017.12.22 |
겨울의 놀이 - 다리세기 놀이 (0) | 2017.12.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