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회의.
왜? 공부하고 있을까?
“잡초처럼 강하게 살자”
어려울 때, 우리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잡초는 작은 틈만 있어도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다. 흙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시멘트 건물 틈, 보도블록 작은 틈에서 사람의 발에 치이면서도 꿋꿋하게 자란다. 화마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까만 잿더미 속에서 제일 먼저 싹을 틔워 생명을 알리는 것 또한 잡초다. 정말 강한 생명력이다.
그런데 잡초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억세고 강하기는커녕 약하디 약한 존재라고 한다. 오히려 잡초를 강하게 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상황, 즉 역경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연약한 잡초들이 어떻게 역경을 이겨낸다는 말인가?
<풀들의 전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잡초, 가장 잡초다운 잡초 50가지를 면밀하게 연구 관찰, 잡초생태학 박사가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흥미롭게 풀어 쓴 글이다.
<풀들의 전략>에서 관찰하는 잡초들은 제비꽃, 괭이밥, 냉이, 민들레, 큰개불알꽃, 쇠비름, 개여뀌, 방동사니, 별꽃, 부들, 갈대, 도꼬마리, 쇠뜨기, 망초, 쑥, 질경이 등 그야말로 잡초다운 잡초들이요,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너무 흔한 잡초들이다. 우리들이 단지 '강하다' 라고 스치기 일쑤였던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영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잡초의 대명사 질경이가 세운 전략을 볼까?
견디기 힘든 환경을 과감히 받아들여 역이용하는 잡초들, 그래서 아름답다
밟히고 밟혀도 꿋꿋이 살아가는 잡초의 대명사 질경이는, 어찌나 밟혔는지 자세히 보면 잎사귀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기 일쑤다. 굳이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만 골라 자라는 질경이는 오히려 사람의 발길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정말 그럴까? 만약 질경이가 사람의 발길이 없는 편안한 곳에 자란다면?
그런데 질경이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을 택하면 금방 다른 식물들에게 쫓겨난다고 한다. 질경이는 다른 잡초들과의 경쟁 대신 사람의 발길을 당당히 받아들여 역이용하는 방법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질경이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모진 발걸음을 이겨 낼 수 있는 걸까?
부드러워서 나물은 물론 쌈으로도 먹을 수 있는 질경이 잎에는 다섯 가닥의 강한 실이 들어 있어서 잎을 찢어도 이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뿌리째 뽑혀 나온다. 잎이 밟히는 경우에 이 실은 잎을 지탱해줄 것이다. 그런데 꽃줄기는 이와는 반대로 겉은 강하게, 안에는 유연하게 만든다. 그래야 밟히는 순간에 유연함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질경이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일수록 꽃줄기를 비스듬히 하여 꽃을 피운다. 그래야 밟혀도 꺾일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인데 쓸데없이 줄기를 키우면 밟히면서 꺾이기 쉽기 때문에 줄기를 최대한 절약하여 자란다. 그래서 잎은 땅속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최대한 아낀 줄기에 붙어 자란다. 그것도 모자라 밟히기를 반복하면서 땅에 바짝 엎드려 자라는 것, 그러고도 밟히면 잎은 구멍이 송송 뚫린 채로 자란다.
이젠 씨앗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퍼뜨려야 한다. 보통의 씨앗들처럼 바람을 이용하면 낮게 자라는 질경이로서는 불리하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 이동하는 것은 무엇일까?
"길을 따라 질경이는 자란다. 질경이의 학명은 'Plantago asiatica' Plantago는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질경이의 씨앗에는 종이 기저귀에 사용하는 것과 흡사한 화학 구조를 가진 젤리 모양의 물질이 있어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며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책 속에서.
잎에서부터 줄기, 꽃대까지 철저한 방법으로 사람의 발에 몇 번이고 밟히어도 당당히 살아낼 준비를 한 질경이는 씨앗에까지 수분을 머금는 순간 젤리형태로 바뀌고 마는 방법을 택하여 사람의 발길 따라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질경이로서는 화려한 꽃을 준비하거나 꿀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다. 바람을 계산할 필요도 없다. 사람의 발만 있으면.
꽃마다 다른 꽃의 모양과 독특한 향기는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물로 해먹는 것, 약으로 쓰는 것, 독을 품고 있는 것 등 잡초마다 독특한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우리들을 배려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뜨려야 하는 잡초가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다보니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진화한 결과다.
덩이뿌리를 가진 참나리는 자신의 덩이뿌리를 멧돼지 등에 먹혀 버릴 위험에 처하면 자폭해버린다.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쑥은 수분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잎에 수많은 솜털을 붙여 통기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제비꽃은 꿀벌이 오지 않는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자가수분을 하는데 애써 벌을 불러 모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도 않고 꽃가루도 준비하지 않는다. 골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세포아풀은 그 골프장의 잔디 깎는 방식에 따라 키를 다르게 하여 자라나면서 유전자에 잔디 깎는 높이를 주입하여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원래 싹틔운 골프장 성격대로 자란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렇다. 흔한 잡초 50가지의 특성을 세세히 관찰, 그들이 살아가는데 저마다 다른 특성을 자세히 들려주고 있는데 50 가지 잡초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상식을 웃돌고 있어 책을 보는 내내 잡초에 감탄을 하게 된다.
들꽃을 좋아하다보니 관심 있게 보던 내게 그간 더러 궁금하기도 했던 것을 많이 알려준 책이었다. 수많은 꽃들의 모양이 다른 이유와 조그만 제비꽃 등이 꽃대가 긴 이유. 밤이면 꽃잎을 오므리는 꽃들의 비밀, 별꽃처럼 그 작은 꽃잎에도 보송보송 솜털을 붙인 이유 등 책 속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그간 모르고 있던 잡초들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잡초들의 생존전략은 우리 인간에게도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동물에게 먹히거나 밟히는 경우를 맞아들여 유리하게 바꾸는 위기관리, 필요 없을 때 쓸데없는 꽃을 피우지 않는 폐쇄화들과 근검, 질경이처럼 밟히는 경우 치명타가 될 줄기를 최대한 줄이는 절약, 개미와 식물들의 아름다운 공생과 은혜 갚기, 도주, 대규모의 비용 삭감 등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잡초의 생존전략이었다. 저자의 면밀한 관찰이 또한 놀랍다.
<풀들의 전략>은 지금이라도 당장 허리를 굽혀 지구 위의 가장 낮은 풍경을 살피게 만드는 책이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큰 야망을 품은 잡초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작은 크기로 살기를 꿈꾸는 잡초가 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하고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크게 성공을 하기도 하고, 밑바닥을 기면서도 행복한 잡초도 있다. 경쟁이 싫어서 사람의 발에 밟히는 고생을 참아가면서 홀로 사는 잡초도 있다. 그래서 '이건 잡초가 아니라 마치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하는 느낌을 받는 독자도 많으리라."
-머리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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