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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누리 /헛간·바라보기

초콜릿과 공정무역-제10회 경제신춘문예/ 채윤영·산문

by 지암(듬북이) 2015. 2. 16.

 

 

 

 

 

초콜릿과 공정무역-제10회 경제신춘문예/ 채윤영·산문

 

얼마 전 어머니와 외출을 했다가 어머니가 커피를 사겠다고 하셔서 스타벅스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 보는 초콜릿을 발견했다. 평소 나는 초콜릿을 상당히 좋아해서 초콜릿 제품은 물론이려니와 웬만한 초콜릿이 들어간 과자 제품들까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초콜릿을 살펴보았다. 그 초콜릿은 '디바인'이라는 브랜드의 초콜릿이었다.

 

나는 '왜 이 초콜릿을 할인마트나 편의점에서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디바인' 초콜릿에 대해 알아봤다. 그 초콜릿은 '공정무역 초콜릿'이라고 불리는 초콜릿이었다. 디바인 초콜릿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평소 내가 알지 못하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됐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중동의 기름 없이, 브라질의 커피 없이, 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없이, 중국의 공산품 없이 산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든지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불편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우리 실생활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즐겨먹는 빵과 과자는 대부분 미국 등에서 수입한 밀로 만든 것이고, 설탕은 중남미 국가들에서 재배한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것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옷감은 인도 등지의 목화로 짠 것이고, 내가 즐겨 먹는 초콜릿은 아프리카 등지의 카카오나무에서 딴 카카오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은 전 세계 각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상품은 전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세계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매매가 이뤄진다. 상품뿐만 아니라 사람과 정보까지 전 세계를 자유롭게 오고 간다. 자유무역의 흐름 속에서 세계화는 이제 소리 없는 전쟁이란 표현이 맞을 정도로 급속하고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세계도 점점 양극화돼 가고 있다. 부자 나라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나라는 더 가난해지고 있다. 불공정한 무역이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들의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많은 생산물을 거둬도 선진국의 큰 회사들이 헐값에 사가는 탓에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선진국 거대 회사들의 저가 구매 정책 때문에 생산자들은 구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어린이들까지 헐값에 노동력으로 착취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무역의 세계화와 이에 따른 수많은 생산자들의 희생과 고통은 심각한 세계적 문제를 만들었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출발했다.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값을 지불하고, 환경보존과 지역공동체를 위한 무역 구조를 만들어서 더불어 잘 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공정무역은 한쪽으로만 이익이 치우치는 기존의 불공정한 무역 형태를 보다 공정하게 생산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꿔보자는 무역의 새로운 흐름이다.

 

공정무역의 목적은 자유무역시장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생산자와 노동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무역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그들의 자립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무역 초콜릿은 어린이들의 노동 없이 재배된 카카오를 정당한 가격으로 직거래해서 만든 초콜릿을 말한다. 공정무역이 새로운 소비 형태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공정무역 상품도 많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커피와 더불어 초콜릿이라고 할 수 있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의 생산지는 대부분 서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다. 식민지 시대에 카카오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도 카카오 산업에 의존하는 저개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현재의 무역구조는 저개발 국가의 영세한 카카오 생산자들을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자유경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유 경쟁의 논리에 따라 저개발 국가들이 대부분인 카카오 생산 국가들의 산업 보호는 철폐되고, 그 결과 카카오 농부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결국 농장주들은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카카오를 생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고용하여 카카오를 생산하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콜릿의 이윤은 대부분 소수의 다국적 기업과 유통회사들에게 돌아간다. 역사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저개발 국가의 아동노예노동을 묵인해 왔다. 초콜릿과 커피 제품의 아동노예노동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커지면서, 기업들도 문제 해결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즐거운 일을 축하하고 피곤할 때 기운을 얻는다. 하지만,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정당한 몫을 보장받지 못한다. 아동들이 학교 대신 카카오 농장에서 위험한 칼을 휘두르며 보호 장비 없이 농약에 노출돼 가며 일하고 있으며, 심지어 카카오 농장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주변의 더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아이들을 사고팔기도 한다.

 

이제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인신매매, 납치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동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 카카오 생산 농부들이 정당한 몫을 받고 안정적으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지금의 무역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

 

카카오 생산 농부들이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보고자 노력한 좋은 사례가 바로 '디바인 초콜릿'이다. 1993년 가나의 카카오 생산단체가 민영화되면서, 카카오 재배 농부들은 그 자신들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쿠이파 코쿠'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교육하고 시장을 배워나갔다. 공정무역 가격으로 시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받던 그들은 1997년 조금 더 과감한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생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완제품 초콜릿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영국의 개발협력기구인 '트윈트레이딩'과 기업가 정신으로 유명한 '바디 숍(Body Shop)' 창업자 아니타 로딕의 도움으로 현실화될 수 있었다.

 

1997년 디바인의 초기 모델인 '데이 초콜릿'이 시장에 나오고, 1998년에는 영국 상점의 판매대에 진열되기에 이른다. 2000년에는 '더블'이라는 조금 더 어린이에게 친화된 공정무역 제품도 출시가 된다. 캠페인을 통해 '디바인'은 'Farmers Own Company'라는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면서 미국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농부가 초콜릿 회사를 소유하면 무엇이 다를까? 디바인의 패키지가 이 다름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바인은 디자인적으로도 고급스럽고 아름다운데, 가나 전통의 문양들을 패턴화 했다고 한다.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강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농부의 회사가 아니었다면, 디바인의 마케팅 담당자는 가나가 가지고 있는 저개발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생산자나 농부의 이야기를 배제하고, 유럽의 어느 선진국에서 만들었다는 것만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저개발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아름다움과 건강함으로 재해석한 농부들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바인의 또 하나의 혁신적 실험은 '쿠아파 코쿠' 조합의 대표자들이 디바인의 이사회에 지분을 가지고 참여해 의사결정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회사지만, 늘 주주인 농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디바인 초콜릿은 의미 있는 사회적 영향을 만들어내면서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도 소비자가격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생산자 직거래로 유통마진을 줄여 오히려 일반 유기농제품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다. 대량 생산되는 다국적 기업의 농산물과 달리 친환경 재배로 생산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 공정무역은 또한 기존 다국적 기업들의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더 큰 긍정적 효과를 보게 할 수도 있다.

 

세계화 시대의 화두는 '더불어 살기'다. 상대를 이용만 하거나 지배하기 위함이 아닌, 지구촌 사람들이 착취를 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살기 위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초콜릿이나 바나나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지만,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와 바나나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왜 가난한지, 왜 이들은 자기들이 피 땀 흘려 생산한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을 먹을 수 없는지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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