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이 누리/놀이 곳간

다리밟기(답교)/ 다리 빼앗기

by 지암(듬북이) 2015. 2. 24.

 

 

 

 

 

 

아래 사진은 2013년 3월 1일에 담은 진천의 농다리

 

 

 

 

 

 

 

다리밟기(답교)/ 다리 빼앗기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하는 세시풍습의 하나.

다리를 왔다갔다 건너면서 노는 세시풍습으로 답교놀이[踏僑戱]라고도 한다.

다리밟기는 자기 나이와 같은 회수를 왕래하면 좋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내 다리 병이 나지 않고 튼튼하며 액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다리[脚]와 물 위의 다리[橋]가 같은 음을 지닌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다리를 밟으면 한 해 동안 다리의 병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크게 성행했다.

 

남녀노소 모두 나와 보름달을 즐기면서 어우러졌다. 풍물패도 동원되어 신명을 돋구었고, 행사가 매우 풍성했다. 한창 때는 밤이 지새도록 다리를 밟았다. 서울의 수표교나 광교의 다리밟기, 송파다리밟기, 함흥 만세교 답교놀이 등이 유명했고, 거의 전국적으로 중요한 다리 위 어디에서나 행해졌다.

 

 

 

이날 밤에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脚病]을 앓지 않는다고 하여 서울과 지방 각지에서 성행하던 세시풍속의 하나이다. 일명 ‘답교(踏橋)’ 또는 ‘답교놀이’라고도 하며, 강릉 지방에서는 ‘다리빼앗기’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에는 이것이 고려 이래의 풍속이라 하고, 답교지희(踏橋之戱)라는 이름을 적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 등은 당나라 이래의 중국 다리밟기의 기록들을 인용하고, 그것이 중국에서 유래하였다고 적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를 액막이[度厄] 또는 주백병(走百病) 들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특히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는 관념이 강한 것은 다리[脚]와 다리[橋]의 발음이 같은 데서 생긴 속신적 관습이며, 언어질병적(言語疾病的)인 심리가 작용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한양에서는 저녁에 종이 울리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다리밟기를 하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혼잡을 이루었고, 수표교와 광교가 가장 심해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장안에 있던 다리는 주로 청계천에 있었고 그 수가 몇 개 되지 않았으므로, 장안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올 때는 혼잡하였다. 그래서 점잖은 양반들과 부녀자들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14일 저녁에 다리밟기를 하거나, 아니면 하루 뒤인 16일 저녁에 하기도 하였다.

 

이를 가리켜 양반다리밟기라고 하였다. 개인이나 가족끼리 나와서 다리밟기를 할 때는 조용하게 하였으나, 같은 마을의 젊은 패들이 집단으로 하거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리밟기를 할 때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혼잡한 가운데 여흥으로 기분을 돋우는 일도 있었다.

 

여기에서 다리밟기는 답교놀이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답교놀이는 일정한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농악을 치거나 장구를 치고 여기에 맞추어 소리하고 춤추고 즐기는 것이다. 풍물소리에 호응하여서 군중들도 함께 즐기기도 하였다. 이때 한량패들이 놀이의 한 몫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양반과 부녀자들은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기호지방의 농촌에서는 다리밟기를 상원날 저녁에 조용히 각자가 하거나,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일도 있었다. 상원날 저녁 돌싸움·횃불싸움·쥐불놀이 등이 있으므로 마을 청소년들이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면서 다리를 밟는 일도 있었다,

 

이 때는 농악을 치면서 흥을 돋우기도 하였다. 영동지방에서는 다리밟기가 변형되어 전승되고 있는데, 주로 환갑이 넘은 노인이나 다리를 앓는 병자가 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다리밟기에 별로 참여하지를 않는다.

 

또, ‘답교’라고 부를 때는 옛날 서당의 학동들이나 마을 청소년들이 원님의 행차하는 모습을 본떠 가장행렬을 하고, 이 때 삼현육각(三絃六角)을 갖추어 풍악을 울리면서 다리를 건너가는 것을 말한다.

 

즉, 다리밟기와 답교를 구분해서 행동을 하였는데, 답교는 다리밟기를 놀이로 연희(演戱)한 것으로 원님이 교자를 타고 의젓하게 행차하는 놀이로 발전되었다. 또 다리빼앗기는 다리 위에서 청장년 사이에 벌어지는 격전을 말한다. 상원날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 마을과 대치한 뒤 농악을 쳐서 서로 마을사람들을 모이도록 한다.

 

이 때 기운을 내기 위하여 술도 마시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이 다 모이면 농악을 격렬하게 자진모리로 쳐서 사기를 돋우었다가, 힘이 센 사람을 앞에 세우고 다리 중앙에 진출해서 서로 대치한다. 시작의 징소리가 나면 서로 상대편을 밀고 잡아당기고 하여서 다리 아래로 떨어뜨린다.

 

상대편을 떨어뜨리면서 한 걸음씩 진출하여 다리를 다 빼앗으면 이기게 된다. 이때 다리 위에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쓰느라 수라장이 되는데, 한번 떨어진 사람은 다시 다리 위로 올라올 수가 없기 때문에, 악을 쓰고 좁은 다리 위에서 집단적으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다리빼앗기는 거칠고 부상자를 낼 수 있는 사나운 놀이이기 때문에, 청장년들만 참가하고 부녀자와 아이들은 둑에서 구경을 하게 된다. 자기네 마을이 몰리기 시작할 때 개천에 떨어진 사람들은 화가 나서 돌을 던지게 되고 그러면 석전으로 변하는 수도 있었다.

 

다리빼앗기에 있어 이긴 편 마을에는 그해 풍년이 들고, 진 편 마을에는 흉년이 든다고 믿고 있어 그해 길흉을 점치는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놀이는 패싸움과도 유사하였으며, 위험성이 있었기에 중지되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리밟기의 횟수에 대해서

`12다리를 건너는 것은 일년이 12달이라는 점에서 다리 하나마다 한 달의 액을 막는다. 12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열양세시기』나 『해동죽지』의 기록과는 달리 『세시잡영』에는 36개의 다리를 밟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다리 3개를 건너기도 하고, 제일 큰 다리나 가장 오래된 다리를 자기 나이 수대로 왕복하기도 한다. 물론 건너야 할 다리의 수는 다리 숫자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답교 횟수를 뜻한다.

 

 

 

 

 

 

 

 

'아이 누리 > 놀이 곳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동십훈(檀童十訓)   (0) 2015.02.28
쥐불놀이  (0) 2015.02.24
윷놀이판  (0) 2015.02.17
윷놀이   (0) 2015.02.17
윷놀이 하는 방법  (0) 2015.02.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