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한국인의 얼
봄이 오면 이 나라 산마다 피어나는 꽃, 이 나라의 전설이 얽혀 있고 또 우리들의 따뜻한 정감이 서려 있는 꽃이 진달래이다. 진달래는 우리나라의 기후풍토에 가장 알맞는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는 방방곡곡 산이 없는 데가 없으며 산이 있는 곳이면 진달래가 안 피는 곳이 없다. 그래서 이 강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진달래이다.
진달래는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어린이들의 손에 의해 꺾이고 또 꺾이고, 나무꾼들의 날카로운 낫에 의해 송두리채 잘려나가도 모질게도 땅에 뿌리를 박고 억세게 피어나고 또 피어난다. 그것은 마치 수없는 전란과 재난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 겨레의 기질과 닮았다고나 할까.
진달래꽃 색깔은 우리 민족정서에 가장 알맞는 색깔이다. 옛부터 이 나라 처녀들의 아름다운 몸차림을 꾸며 주던 옷은 노랑 저고리와 분홍 치마로서 그것은 이 나라의 꽃인 개나리와 진달래꽃의 색깔이다. 봄이 되면 노랑 저고리와 분홍 치마의 새악씨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봄바람에 치마자락을 날리면서 바구니를 옆에 끼고 논두렁 밭두덕에서 나물캐는 광경은 한국이 아니면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 진달래가 필 무렵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인 것이다.
분홍빛 진달래 동산과 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 마을에서 살아오고 또 그 속에서 정서를 키워온 우리 겨레는 자연히 그러한 빛깔의 옷을 즐겨 입게 되었고 또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 색깔은 가장 한국적인 색깔이요, 진달래꽃에는 이 땅에서 살아온 여인네들의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의 한과 서러움이 배어 있는 꽃이다. 이른 봄부터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는 한맺힌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연분홍빛 진달래꽃잎에 스며들 듯 이 땅에서 살아온 백성들은 얼룩진 역사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 숱한 슬픔과 서러움을 이 강산에 피어난 진달래꽃을 붙들고 하소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저 서러웠던 일제의 속박에서 고국에의 향수를 이 꽃에 붙여 노래한 시가가 그렇게도 많았던 것이다.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
우리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 이흥렬, 〈바위고개〉 제2절
유명한 이흥렬(李興烈)의 가곡 〈바위고개〉는 1933년에 작곡한 것으로 연가가 아닌 조국의 비운을 노래한 저항곡이다.
여기에서 〈바위고개〉는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이고 진달래는 우리의 겨레이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의 구절은 '조국인 임은 없어도 우리 겨레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진달래꽃에는 우리 겨레의 정서가 얽혀 있고 이 겨레의 얼이 스며 있다. 산옹초동(山翁樵童)으로부터 유한남녀(有閑男女)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삶을 이어온 우리 겨레의 가슴에 뿌리가 박힌 꽃으로 모두가 한없는 애정을 느껴 왔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한국인의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나라꽃으로 진달래꽃이 가장 적절하다는 의견은 많이 제시되었다. 구한말 때 황성신문(皇城新聞)에서도 언급이 있었고 해방후 군정 문교부에서도 국화인 무궁화에 이의가 있었던지 대안이 될 만한 후보 식물을 생물학회에 의뢰해온 적이 있었는데, 학회에서는 진달래를 후보화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후 1956년에 다시 국화에 대한 논의가 일었을 때 일부 인사들이 역시 진달래를 추천했다. 당시 이민재(李敏載)씨는 조선일보(2월 8일자)에 기고한 〈국화 무궁화 재검토〉란 글에서 진달래를 추천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략) ······ 사군자(四君子)나 준군자(準君子) 중에서는 내세울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어느모로 보든지 가장 알맞는 것에 진달래가 있다.
······ 우선 식물학적인 면으로만 볼 때 우리의 풍토에 알맞는 식물에 '진달래'가 제일인 것 같다. 사실 이 꽃과 우리 민족과의 교섭(실생활면에서나 정서면에서)은 아주 깊어서 필자가 아는 한도내만 하더라도 오랜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3월 3일의 '화전놀이'는 떡에 진달래의 분홍꽃잎을 넣어서 그 빛깔과 향기를 즐겼고 보다 많은 시인들이 노래로서 민족정서에 많은 촉매적 역할을 한 꽃임에 틀림없다. 또 종류는 대단히 많아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30여 종이나 되고 전세계에는 3백 종도 넘는다. 이의 분포는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는 전토에 걸쳐 있으며 그 양이 풍부하여 화계(花季)에 이르러 만산(滿山)의 진달래는 확실히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인상을 깊게 해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품종이 많은 것만큼 꽃도 각색이나 이 꽃의 특징은 어느 종류나 간에 그 품(品)이 담담하고 청초한 감을 주는 것이 좋고 또 봄이 되자 다른 식물들이 대부분 잠자고 있을 때 마치 선구자처럼 제일 먼저 찬바람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부지런함이 좋은 것이다.
이보다 조금 앞서 조동화씨는 한국일보(2월 3~4일자)에서 진달래를 추천하였다. 그러나 주요한(朱耀翰)씨는 진달래는 정열적인 대신에 번뇌상(煩惱相)이 있다고 하여 개나리를 추천하고 있다.
어쨌든 진달래는 기쁨과 즐거움과 슬픔과 고통을 이 겨레와 함께 하면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이 땅에서 자라면서 꽃을 피울 것이다. 진달래는 한국의 꽃이다.
간혹 북한의 나라꽃을 진달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의 나라꽃은 목란(木蘭, 목련)꽃으로 1992년 4월에 정식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목란을 '조선의 꽃'이라 부르고 북한 정권 관련 상징으로 두루 사용하고 있는데 김일성이 이 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출처: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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