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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누리/생태 나들이

새집 짓는 목수가 겨울 숲 만나는 법- 글 사진 김기돈

by 지암(듬북이) 2018. 6. 2.

 

새집 짓는 목수가 겨울 숲 만나는 법

- 글 사진 김기돈

 

아주 오래전 인간은 동굴 벽을 뾰족한 것으로 ‘긁어’ 자신을 표현했다. ‘그림’이란 말 뿌리가 ‘긁다’에서 왔다는 말을 들었다. 동굴 벽을 긁어 새를 그리면서 퍼덕이며 날갯짓하는 새를 상상하고, 어느새 자신이 새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건축가는 ‘그림을 벽에 거는 것은 창을 내는 것과 같은 마음’이라고 했을 것이다. 새집을 짓는 것이 이와 같을까.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새집’에 담아 나무에 걸어 놓는 것은 마치 자연에 창을 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새집을 계속 짓는 것은 아마도 자연을 향한 정중한 ‘초대’인지도 모른다.

 

‘새집 짓는 목수’라는 이름이 좋다

 

이대우(73세)님은 언젠가 서울 살이를 그만두리라 생각했다. 50세 중반이 넘어가던 어느 날 갑자기 ‘계곡물에 떠내려가듯’ 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아내 서경옥(70세)님과 함께 우연하게 마음을 빼앗긴 봉평 흥정리 흥정계곡 풍광이 살터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덜컥 결정해버렸다.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상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새로운 삶을 직조하고 역동성을 가져왔으니까.

 

산골로 올 때부터 나무 만지작거리는 목공 일을 하고 싶었다. 산골 살다 보면 집도 고치고 문짝도 고쳐 달아야 하고 온갖 수리도 직접 해야 한다. “동생이 근처 살둔마을에 먼저 자리 잡아 손수 집 짓고 살았어요. 목공 설비도 있고 나무 다루는 경험도 많았고요. 목공 기계 다루는 것, 나무 다루는 것, 새집 만드는 것도 동생에게 물어보며 배웠어요.”

 






산골 생활이 조금씩 자리 잡아가던 두어 해 뒤부터 집 주위 자주 눈에 띄는 갖가지 새들이 궁금해졌다. 그곳은 1년 절반이 겨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눈 많고 온도가 많이 내려가는 지역이다. 날씨 탓에 먹이를 못 구해 죽은 작은 새들을 많이 발견하곤 했다. 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새집’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새집 1500채를 지었다. 집 지으면서 뜯어낸 나무들, 자연에서 주워온 가지들을 재료로 썼다. 새집을 만들어서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2~3점씩 집어주기도 하고, 근처 성당이나 학교에 십여 개씩 선물하기도 했다.

 

‘왜 하필 새집을 짓느냐?’라고 사람들은 묻는다. ‘새들을 너무 좋아하고 무엇보다 산골에는 늘 새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새집은 새들이 사는 집이다. 사람의 시선으로 집을 만들지만, 결국 새들이 좋아하고 숨기 좋고 안전하게 느끼는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대우님은 새집을 지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디서나 산책을 할 때 우선 어떤 새들이 있는지부터 살펴요. 새집이 자연에 눈을 뜨게 한 거죠. 새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새집은 나무판 일곱 조각의 미학이며, 야생과 인간을 이어주는 생명의 끈이에요.”

 

판자 일곱 조각으로 새집 하나 짓는 게 끝이 아니다. 새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로 생각이 넓어지게 마련이다. “자연과 만나 소통하고 말을 거는 거죠. 내가 새에게 말을 걸고 새들은 새집에 들어와 살면서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 아닌가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새집 짓기에 대해 인간이 ‘자기만족’ 아니냐, ‘새의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보기에만 좋은 새집은 의미 없다’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새집’은 자연을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새집을 지어본 사람, 숲에 새집을 손수 달아본 사람은 어디서나 새에게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갖게 되어 있어요. 아이들에게도 새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새집 짓기도 해보고 학교 근처 숲에 새집을 함께 달면, 아이들 스스로 자연을 향해 창문을 여는 것과 같아요. 자연환경의 척도는 새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에 따라 가늠하잖아요. 새가 살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작은 새들에 대한 연민으로

 

새집 재료는 계곡 바위에 걸려 계곡물에 오랫동안 씻겨 매끈해진 가지들이다. 이런 가지들은 물에 강해 오랫동안 썩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무로 지은 새집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정도 간다. 배낭 지고 주워온 나무들을 일일이 잘라 엮고 고정해 새집을 만든다. “새집에서 지붕이 가장 중요해요. 지붕 때문에 다른 것이 힘을 받아 흐트러지지 않아요. 지붕은 직사광선이나 비나 눈을 맞게 되니까 천연페인트를 여러 번 칠해주죠. 화학페인트를 쓰면 절대 새들이 들어오지 않아요. 요즘은 계곡을 정비한다고 직선으로 만들어 나무들이 다 씻겨 내려가 버렸어요. 바위에 나무가 걸려서 오래 씻긴 것을 구하기 어려워요. 안타까운 일이죠.”

 

새집은 ‘새 살림집’과 ‘새 먹이집’으로 나눈다. 새들이 드나드는 3센티미터(㎝) 구멍을 낸 살림집을 10개 정도 걸면 절반도 안 들어올 때가 많다. 사람 입장에선 이유가 없는데 새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때도 있다.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도 편하게 생각하고 들어와 사는 것은 새들이 선택하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새집이 되는 거죠. 새집을 지을 때 가능한 자연물을 사용하면 새들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고,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천적이 공격할 수 있는 불안한 공간에 들어갈 리가 없죠.” 새들이 안 들어가면 위치나 방향을 바꾼다. 새들이 들락거리고 탐색하다가 그냥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새 살림집을 다는 곳은 앞이 탁 트이고, 간격도 4∼5미터(m)는 되어야 한다. 빛이 잘 들어오고 바람이 직접 들이치지 않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 눈높이보다 조금 위가 좋고, 사람이 번잡스럽게 왕래하는 곳은 피해야 한다.

 

이대우님은 봉평에서 홍천으로 살터를 옮긴 지 4년 되었다. 봉평 집 주변 숲에 새 살림집을 많이 걸어 놨고, 집 앞에 새 먹이집도 40여 개 두었다. 새들은 새 살림집이 마음에 들면 그 속에 둥지를 따로 짓는다. 깃털이나 마른 풀을 먼저 바닥에 깔고, 새들이 부화했을 때 입구에서 한 발을 짚고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입이 닿도록 적절한 높이를 만든다. “새 살림집 밑이 너무 넓으면 새들이 무언가를 한참 집어넣어 힘들게 높이를 맞추니까 미리 넓이와 높이를 잘 잡아주고, 새들이 너무 답답해하지 않도록 최소 8㎝ 정도 공간을 유지해야 해요.” 새들은 5월 말에서 7월 말 사이 가장 많이 번식한다. 새들은 정주하지 않는다. 대부분 새집은 작은 새들이 산란하고 번식을 위해 잠깐 사는, 길어야 석 달 정도 쓰는 공간이다. 오랜 시간 새들이 대를 이어가며 살터로 만들어 간다. 새 살림집을 미리 숲에 달아 비에 씻기고 인공 냄새도 사라지게 놔두는 것이 좋다. 특히 겨울 숲은 다 드러나서 살펴보기 좋아 새집을 달아줄 위치 잡기에 좋다.

 

겨울은 작은 생명들에게 혹독한 조건이다. 눈이 많이 내려 쌓이면 먹이 찾는 데 어려움에 빠진다. 그래서 겨울마다 작은 새들을 위해 새 먹이집을 달아주고 먹이를 나눠주곤 했다.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노랑할미새, 딱새는 개체 수가 많지만, ‘새들의 민초’이다. 겨울에 잘 죽고 잘 잡혀먹힌다. “포유류도 겨울나기는 힘겹지만 새들은 더 해요. 새 먹이집을 달고 먹이 나누는 활동이 문화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기에 바빠 새들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먹이집은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 새들의 생존을 위해 먹이를 나누는 공간이다. 구멍이 크고 양쪽이 터져 있어야 한다. 한 곳만 열려 있으면 불안하게 느껴져서 새들이 접근하지 않는다. 먹이를 고정하기 위해 못을 아래에 박아 둔다. “쇠기름을 구해 먹이꽂이에 꽂아줘요. 이것이 얼면 아주 작은 박새나 곤줄박이가 부리로 탁탁 쪼아 깨먹어요. 곡류보다는 기름기 있는 견과류나 해바라기 씨를 좋아해요.” 작은 새들은 행동반경이 보통 1∼2킬로미터(㎞) 정도이다. 열매 달리는 관목류와 덩굴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풀이 우거져야 벌레도 오고 새들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다. 보기 좋으라고 반듯한 나무만 남기면 작은 새들은 살터를 잃게 된다.







더 많은 사람과 새집 짓는 법을 나누고 싶다

 

어떤 공간에 새 소리를 듣고 싶으면 새들이 좋아하는 열매 맺는 나무를 곳곳에 심는다. 한두 해 지나면서 나무가 자리를 잡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새들이 찾아오고 철 따라 새들의 소리가 풍경이 된다. 겨울 숲에는 겨울나무가 새들을 위해 남겨둔 열매들이 새들을 먹여 살리며 생명의 소리로 채워진다. 새 먹이집을 통해 겨울에 부족한 먹이를 나누면 새들이 일상에 더 깊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이대우님은 강원도 오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종일 놀고 새집을 짓고 새집을 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미 몇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작은 손으로 몰두해 새집을 조립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작은 학교들이 자꾸 없어져 아이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현실이다.

 

새해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새집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 “지난 15년 경험을 부지런히 나누려고요. 거창한 교육이 아니라 한두 명 정도 집중해 나무 다루는 기본부터 시작해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새집 만드는 법을 공유하는 거죠. 서너 달 정도면 목공 기초뿐 아니라 새집의 모든 것을 다 익힐 수 있어요. 새집을 통해 자연과 만나는 접점을 함께 발견하는 거죠.” 그이는 2006년 시골생활 10년을 돌아본 <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도솔 펴냄)과 2011년 누구나 쉽게 새집을 지을 수 있도록 <새집목수 이대우의 새집 만들기>(도솔 펴냄)를 펴냈다.

 

사진4_새 살림집 (1)

 

요즘은 해떨어질 때까지만 일을 하려고 작업실에 전등을 안 달았다. 예전에는 너무 몰두해 불을 켜놓고 밤늦도록 새집 짓는 일을 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금까지 공책에 설계해 놓은 수백 가지 새집들을 완성해 놓고, 이미 곳곳에 떠나보낸 새집들 가운데 마음이 가는 모양을 하나씩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

 

새집을 만들어 간 분들이 새들이 찾아와 알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다. 어떤 사람은 숲이 근처에 있는 아파트 베란다 구석에 새 살림집과 새 먹이집을 달았는데, 새들이 먹이를 구하러 오기도 하고 살림집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새집은 인간이 소유하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에서 새들을 만나기 위해 만든 통로예요. 새들이 깃들어 살터가 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죠.”

 

* 2016년 1-2월 합본호 <겨울나무가 겨울숲에게> 특집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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