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이 누리/우리문화 곶간

밭갈이

by 지암(듬북이) 2015. 3. 30.

 

 

 

 

 

밭갈이

 

 

▲ 김홍도의 그림 ‘쌍겨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밭갈이

 

음력 이월에 채소나 곡식을 심을 밭을 처음 따비나 겨리쟁기로 갈아엎는 일.

 

밭갈이는 논갈이와 연관이 깊다. 논갈이가 대부분 소와 쟁기를 이용하여 이뤄지고 있는 반면에, 밭갈이는 밭의 위치와 크기에 따라, 경작할 작물의 심는 체계와 심는 방식에 따라 따비, 쟁기, 극젱이, 가래, 쇠스랑, 괭이 같이 다양한 도구가 갈이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늘날 쟁기와 근원이 닿는 밭갈이용 도구는 따비이다. 『주역(周易)』에 신농씨(神農氏)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하는 따비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쓰여 왔다. 서남해 섬지방과 제주도, 강원도에서 밭을 갈 때 그리고 쟁기가 미처 갈지 못한 구석을 갈 때 따비가 쓰였고, 형태에 따라 크게 말굽쇠형, 코끼리이빨형, 주걱형으로 나뉜다.

 

갈이 연장

① 따비

비탈이 심하거나 돌과 나무뿌리가 많아 쟁기를 쓸 수 없는 곳에서 땅을 일구는데 쓰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다.

 

 

 

 

 

 

 

따비는 농경초기의 연장인 뒤지개에서 오늘날의 쟁기로 발달되는 중간과정의 연장으로, 이미 청동기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20세기 이후에는 내륙지방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도서 지방과 해안 지방에서만 근래까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따비는 날이 한 개인 외날따비와 두 개인 쌍

 

 

날따비가 있다.

 

 

외날따비 <사진1-1>에는 날의 모양에 따라 주걱형 · 말굽쇠형 · 송곳형이 있고, 쌍날따비<사진1-2>는 코끼리 이빨처럼 생긴 송곳 모양의 날이 두 개가 있는 따비를 말한다. 서호수(1736~1799)가 지은 『해동농서』의 따비<그림1-1> 는 중국의『농정전서』의 그림을 베낀 것이기는 하지만'따뵈'라고 우리말 이름을 쓴 것이나, 쟁기 · 호미 · 디딜방아(양다리).와 같이 중국과는 모양이 다른 연장은 우리 것으로 그림을 다시 그려 넣은 점으로 미루어 당시 이와 비슷한 형태의 따비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② 쟁기

 

 

쟁기 모습의 갈이용 도구는 따비보다 한층 발전한 것으로써 정확하게 시기가 밝혀진 바는 없으나 훨씬 후대에 발생하였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가축의 노동력을 사용하게 되고 깊이갈이[深耕]가 본격화된 것을 미루어 그 즈음에 쟁기형 도구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나, 가축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끌었던 사례들도 있어 꽤 오래 전부터 쟁기형 도구가 사용되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비는 몸체 자루와 쇠날 부위로 크게 나뉘고, 손과 발을 사용하여 움직이는데, 쟁기형 도구들은 성에가 몸체의 중심 자루인 술에 연결되어 앞으로 길게 내뻗어 있고 끈이 달려 있어 견인할 수도 있다.

또한 면적이 넓은 철제 보습날이 끼워져 있어 흙을 일구는 능률이 높다.

쟁기형 도구들 중에서도 보통 쟁기라 부르는 도구는 일구어져 올라오는 흙을 되엎을 수 있도록 보습에 볏이 달려 있다. 몸체의 보습이 달린 술바닥 부위가 평평한 것이 일반적이다.

 

③ 극젱이

 

 

그 밖에 볏이 없고 술이 곧게 내려가며, 술바닥이라고 할 부분이 거의 없는 극젱이도 쟁기형 도구에 속한다. 땅을 얕게 갈 때 극젱이가 쓰이며 때로는 사람이 직접 또는 지게에 매어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축력이 사용되기 전에 사람갈이용으로 극젱이와 같은 형태가 쓰였으리라고 추측된다.

 

북부지방과 강원도 산악지대에서는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끄는데 이를 겨리(겨리질, 겨릿소)라 부른다. 현재 겨리는 밭갈이 작업에만 주로 이용되고 있다. 밭의 갈이작업을 횟수로 구분하여 보면 두 번으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④ 가래

 

 

흙을 떠내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기구의 한가지이다. 삽날 양 쪽 고리에 끈을 묶어 한사람은 삽자루를 잡고 양쪽에서 줄꾼 한사람씩 끈을 당기는 것이 기본인데 '세손목 한 가래'라고 한다. 가래처럼 생겼으나 줄을 달지 않고 혼자서 쓸 수 있는 작은 가래는 종가래라고 한다.

 

⑤ 화가래

 

 

괭이형태의 흙 파는 기구로 쇠삽날을 씌운 군두의 끝부분에 구멍을 뚫어 자루를 끼웠다. 가래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⑥ 써래

 

 

소가 쟁기를 끌어 갈아낸 논의 바닥을 평탄히 고르는 농기구이다. 굵은 통나무 밑에 구멍을 파서 써렛발을 끼우고 윗쪽에 ㅠ모양의 손잡이를 끼웠다.

 

⑦ 쇠스랑

 

 

쇠스랑은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풀무덤 등을 쳐내는 데 쓰는 갈퀴 모양의 농기구이다.

쇠로 서너 개의 발을 만들고 자루를 박아서 만든다. 외양간에 깔아두었던 짚이나 풀을 끌어낼 때, 끌어낸 짚이나 풀로 두엄을 만들기 위해 뒤집을 때 쓸모가 있었다. 또한 밭을 파고 흙을 고르거나, 씨 뿌린 뒤에 흙을 덮고 감자나 고구마 등을 캐는 데도 쓰였다.

 

⑧ 괭이

 

 

괭이는 땅을 파는 데 쓰는 농기구의 하나로 넓적한 쇠의 'ㄱ'자처럼 달린 굇구멍에 길다란 자루를 끼워 사용한다. 종류에는 왜괭이, 가짓잎괭이, 삽괭이 등이 있다.

 

⑨ 번지

 

 

흙을 고르거나 곡식을 긁어모으는 데 쓰는 농기구. 형태는 일정하지 않다. 좁고 긴 네모꼴의 널빤지에 써렛발이 맞도록 작은 구멍 두 개를 뚫은 것이 있고, 작은 나뭇조각 두 개를 덧대어 턱을 만들고 써렛발을 대어 써레 손잡이에 잡아맨 것이 있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널빤지로 만든 번지는 사람이 어깨에 메어 끌고 나가거나 두 사람이 마주서서 손으로 쥐고 훑어 나간다.

 

⑩ 발고무래

 

 

발고무래는 멍석에 곡식을 말릴 때 쓰는 고무래와 흙덩이를 깨는 곰뱅이보다 능률적으로 긁거나 밀어서 고를 수 있도록 그 기능이 발전된 농기구다. 즉 곰뱅이의 몸체 아래쪽 면에 4~6개의 구멍을 뚫고 그곳에 5~10㎝ 길이의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막대나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발을 일정한 간격으로 끼워 박아 갈퀴 또는 쇠스랑처럼 만들었다. 나무막대로 발을 해박은 것을 시파(柴杷)라 하고, 대나무로 발을 해 꽂은 것을 죽파(竹杷)라 하는데, 전라남도 영암에서는 이것을 이용해 곡식의 경우 멍석에 펴서 널 때 긁거나 밀어서 고르고, 흙덩이는 잘게 깨뜨리고 씨앗을 덮으며 돌은 긁어모아서 버리는 데 사용한다.

 

⑪ 곰방메(곰뱅이)

 

곰방메는 쟁기로 간 논밭의 흙덩이[쟁깃밥]를 두들겨 잘게 부수는 데 쓰는 농기구이다. 또 씨앗을 뿌리기 위해 쟁기로 골을 타면 곰방메로 이랑을 편평하게 고르고, 씨를 뿌린 뒤에는 흙덩이를 깨어 고르면서 씨앗을 덮는 데에도 사용한다.

 

 

밭에 작물을 심기 훨씬 전에 밭을 우선 한 번 갈아두는데, 잡초나 흙 속에 남아 있는 이전 작물의 뿌리를 제거하면서 밭을 완전히 엎어놓기 위함이다. 이때 토양이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여 작물 성장을 돕게 하기 위해 밭에 두엄이나 비료를 군데군데 뿌려놓은 상태에서 갈이를 한다. 그러고 나서 작물을 심을 시기가 되면 다시 한번 경작지를 갈이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哯]과 이랑[畝]을 만든다.

주로 밭갈이는 봄에 이루어지는데, 겨리농경을 통해 경작지가 어떻게 조성되는가를 살펴보면 파종하는 작물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출처: 다음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위키백과사전, 짚풀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밭갈이.hwp

 

 

밭갈이.hwp
0.46MB

'아이 누리 > 우리문화 곶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오 이야기   (0) 2015.06.17
24절기 - 곡우   (0) 2015.04.14
이무기 이야기   (0) 2015.03.26
춘분   (0) 2015.03.18
길놀이의 제의적 특성과 전통   (0) 2015.03.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