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개불알풀
식물 국가표준이름인 '국명' 변경은 신중해야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와 관련된 여러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그중 식물명과 관련된 글이 있어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박사님이 쓰신 그 글은 공감 가는 내용보다 그렇지 않은 대목이 더 많이 읽혔습니다.
일단 중대가리나무를 ‘구슬꽃나무’로 순화해서 부르자는 말에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바꾸자면 중대가리풀을 바꿔야 할 건데, 그건 토방풀로 바꾸자고 하시니 타당한 명칭이라면 의견을 모아 수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난초과 식물의 경우 우리말 뒤에는 ‘난’, 한자어 뒤에는 ‘란’으로 적는 맞춤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법은 금시초문입니다.
만약 그런 법이 있다면 앞 글자가 한자어냐 우리말이냐를 먼저 판단해서 써야 하므로 더욱 헷갈릴 것입니다.
‘난’과 ‘란’은 일종의 복수표준어처럼 둘 다 인정되어 쓰이는 말입니다.
식물명에 있어서 한 글자로 쓰일 때는 ‘란’, 두 글자로 쓰일 때는 ‘난초’로 많이 씁니다.
사철란, 콩짜개란, 금난초, 혹난초 하듯이 말입니다.
다만, 이 룰에서 어긋나는 것으로 포태제비난, 개제비난, 탐라난 정도가 있으니 그걸 포태제비란, 개제비란, 탐라란(또는 탐라난초)으로 수정하는 편이 간단할 겁니다.
족도리풀을 맞춤법에 따라 족두리풀로 바꾸자는 건 왜 하필 족도리풀만 그렇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맞춤법과 다르게 쓰고 있는 식물명은 족도리풀뿐이 아닙니다.
풍게나무는 풍개나무로, 앵도나무는 앵두나무로, 산앵도나무는 산앵두나무로, 복사앵도나무는 복사앵두나무로 바꿔야 할 겁니다.
이왕이면 이참에 호도과자도 호두과자로 바꾸면 좋겠지만 조금 잘못됐어도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면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게 추세인 듯합니다.
영어이름인 경우에는 발음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대개 ‘메타세쿼이아’로 쓰지만 ‘메타세콰이어’라고도 쓰고, 읽을 때는 ‘메터시쿼이어’ 또는 ‘메러시쿼이어’ 등으로 발음하니까요.
이렇듯 식물명은 조금 잘못됐더라도 큰 문제점이 없으면 그냥 하나로 통일해서 쓰면 됩니다.
사소한 이유로 자꾸 변경하게 되면 혼란만 초래합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은 그래서 정한 겁니다.
그러지 않고 이거저거 여러 이름을 쓰거나, 맞는 것을 찾아 쓴답시고 매번 고쳐서 쓰면 혼란이 가중됩니다.
그런데 식물학자들마저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공식이름(국명)과 다른 국명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광릉요강꽃이라는 정식 국명이 엄연히 있는데 광릉복주머니란이라고 쓰는 건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분은 사위질빵 대신 수레나물이 맞는 이름이라며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19세기에 물명고에서 ‘술의나물’로 기록된 것일 뿐 수레나물이라는 말이 최근에 쓰인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 널리 사용하는 사위질빵을 쓰지 않고 수레나물을 고집하는 건 독단적인 사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필자도 한때는 계요등은 틀리니까 두음법칙에 따라 계뇨등(鷄尿藤)으로 써야 한다며 고집스레 책자마다 계뇨등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록된 계요등을 존중해서 그렇게 씁니다.
그런데 위 박사님의 글에서 ‘개불알풀’을 ‘봄까치꽃’으로 바꾸자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큰개불알풀은 큰봄까치꽃으로 바꾸자고 했고요. 개불알풀이나 큰개불알풀 같은 이름은 아이들에게 가르치거나 방송에서 입에 올리기 민망한 이름이라면서 말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큰개불알풀을 봄까치꽃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주장대로 개불알풀을 봄까치꽃으로 하고, 큰개불알풀을 큰봄까치꽃으로 하자니 좀 맞지 않다 싶은 겁니다.
물론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큰개불알풀한테 줘버리면 정작 개불알풀은 무엇으로 불러야 좋을지 난감해지니까 그러는 줄은 압니다(애기봄까치꽃 정도로 하면 되긴 합니다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큰개불알풀을 봄까치꽃으로 불러온 사람한테도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큰개불알풀을 왜 봄까치꽃으로 부르는 건지 타당한 이유가 밝혀진 건 없습니다.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이름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이해인 수녀님께서 시(詩) 비스름하게 쓰신 ‘봄까치꽃’이라는 글이 그 이름을 퍼져나가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수녀님의 입장에서는 상스러운 이름을 가진 꽃을 자신의 글에 그대로 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글에는 분명 까치가 등장하지만 왜 그 꽃을 봄까치꽃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개불알풀이라는 추천명 외에 ‘봄까지꽃’이라는 국명을 제시합니다.
혹자는 그것이 ‘봄까치꽃’의 오타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오타가 아닐 수 있어 보입니다.
봄까지 피는 꽃이라고 해서 봄까지꽃이라고 했고, 그것이 발음상 봄까치꽃으로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입니다.
발음하기 부끄럽기는 하나 해당 식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예쁘게 들리기는 하지만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맞을까요?
만약 개불알풀이 상스러운 이름이어서 새로 지어줘야 한다면 별 의미도 없는 이름보다는 해당 식물과 관련 있는 이름으로 지어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개불알풀을 보고 봄까치꽃을 쓰신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한 큰개불알풀을 보고 쓰신 게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글 내용 중에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이라고 한 표현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큰개불알풀을 봄까치꽃으로 여기게 된 것 같고요.
개불알풀은 홍자색이 도는 꽃이 피고 아주 작아서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논의가 촉발된 것은 2015년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출간된 책 때문입니다.
다소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나타난 그 책은 1937년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저격하면서 우리나라 식물명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식으로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그 선정성에 구미가 당긴 일부 언론사들이 야단이라도 난 것처럼 대서특필해 주었고, 대형 포털사이트에서는 그 책의 내용을 무료서비스로 제공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저자가 쓴 내용은 기초적인 식물명과 과명을 틀리게 쓴 곳이 너무나도 많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적지 않았으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왜곡된 추측성 주장이 많아 명예훼손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많은 이들에게 조목조목 항의와 지적 세례를 받았고, 결국 포털사이트에서 서비스 제공을 포기하게 됐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런 책이 아직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점이고, 그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이 선정적인 책 제목과 함께 인터넷상에서 계속 유통된다는 데 있습니다.
식물의 실체를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깊지 못한 연구와 짧은 견해에 의한 추측을 갖고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집필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긴 합니다. 국어 연구를 하면서 자기 임의대로 식물명의 유래담을 지어내서 인터넷에 연재한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순 엉터리였습니다. 우연히 통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물어봤더니 자기가 유래담을 쓴 식물을 실물로는 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의 글이 인터넷에 떠다니는 걸 봅니다. 실수가 아닌 무책임한 그 글들이 지금도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선개불알풀
개불알풀
봄까치꽃 / 이해인
까치가 놀러 나온
잔지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인터넷 검색하다보니 아래와 같이 참 어이없는 글도 확인하게 되었다.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의 기자가 있다는 것이...에궁!
그러나 숙녀라면 이들을 각각 봄까치꽃, 큰봄까치꽃, 선봄까치꽃, 좀봄까치꽃이라 부른다.
상것들은 개불알풀 선개불알풀 큰개불알풀 눈개불알풀 좀개불알풀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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